해외 취업, 스펙 쌓으려다 몸도 마음도 골병든다

조현주 기자·조아라 인턴기자 입력 2014. 7. 31. 20:21 수정 2014. 7.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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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 아무개씨(27)는 일자리를 찾아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씨는 그동안 졸업 유예를 하면서까지 인턴직을 돌며 1년 반 가까이 경력을 쌓았지만 여전히 치열한 취업 경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씨는 "한국에서는 청년들이 취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거기에만 머무르게 된다. 한국에 워낙 일자리가 없다 보니 미국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3년 10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외국인 투자 기업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 ⓒ 연합뉴스

청년 구직자 950만 시대

해외 취업에 눈을 돌리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청년 구직자가 950만명을 넘어서 청년 실업 문제로 진통을 앓고 있다. 청년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 취업이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있는 돌파구로 떠올랐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해외 취업 통계에 따르면 해외에 취업한 인원은 2009년 1571명에서 2012년 4007명으로 2.5배나 늘어났다.

연령별로 보면 20~30대가 압도적이다. 해외에 취업한 20~30대는 2009년 1443명에서 2012년에는 3837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해외 취업 인원과 비교해 각각 91%와 95%에 해당한다. 게다가 대졸 취업자의 비율 또한 매년 80%를 웃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한국 청년들의 취업 전쟁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알려주는 증거다. 해외 취업자들의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자 정부는 2013년부터 해외 취업 정책을 양에서 질 중심으로 전환(단순노무직 배제, 연봉 기준 설정, 단기 비자 배제 등)하기에 이르렀다.

해외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 대다수가 '빛나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꽤나 팍팍하다. 고임금과 '스펙 한 줄'을 바라며 머나먼 타국으로 떠났지만 한국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김 아무개씨(30대 남성)는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두바이에서 일했다. 김씨는 국내 대기업의 두바이 법인이 낸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현지 채용으로 입사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현지법인에 채용된 것이어서 자부심이 상당했다.

자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으로 바뀌었다. 상습적인 야근과 기대에 못 미치는 연봉 때문이었다. 김씨는 "현지에서 채용된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 총 4명이었다. 그중 20대가 2명이었다"며 "한국에서도 야근은 자주 하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월급이 180만~200만원에 머물렀다. 몇 달 일을 해보고 나서 돈을 모을 생각은 아예 접었다"고 말했다.

그를 더욱 서글프게 한 것은 현지 채용과 본사 파견 직원 간의 차별 대우였다. 김씨는 "한국 본사에서 파견된 주재원과 업무량을 비교할 때 (내 업무량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데 월급은 주재원보다 턱없이 적었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주재원들의 식비는 본사에서 지원하는 운영비로 지급되지만 현지 채용 직원들에게는 식비 지원이 없었다"며 "자연스럽게 주재원과 현지 채용 한국인들이 따로 점심을 먹게 됐는데, 그처럼 사소한 차별이 더욱 서러웠다"고 덧붙였다.

해외 취업자, 2012년 4007명으로 급증

김영은씨(37·가명)는 현지 채용 제도를 악용한 기업의 꼼수 탓에 좌절한 경우에 해당한다. 국내 한 공기업의 인도 지사에 현지 채용된 이씨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진급 대상에 오를 수 없다. 이 지사는 현지 채용 시 11개월 단위로 계약하며 양자의 동의하에 11개월씩 계약을 연장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12개월 이상 단위로 계약을 맺으면 같은 계약직이라도 세제·근무·진급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기업이 돈을 적게 주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취업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국외에 소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해외 현지법인에 채용되는 경우에는 해외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

해외에서 취업한 한국인들이 부당해고나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현지에서 소송을 벌이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인도에서 근무 중인 김씨는 "특히 파견 직원이 아닌 현지 채용된 한국인이 법의 보호를 받기란 더더욱 어렵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현지 채용된 이들 중에 이중 계약을 맺은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 관리소에 제출한 계약서와는 별도로 더 낮은 임금이 적힌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일을 당해도 쉬쉬하게 된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다. 한인 커뮤니티가 워낙 좁기 때문에 금방 소문이 퍼지고 결국 해당 기업 측의 농간으로 재취업 기회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외 취업에 어렵게 성공하더라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취업 컨설팅업체인 GIC(Global Internship Consulting)의 김재헌 해외사업부 팀장은 "해외 취업자를 관리하는 기관이 사실상 없는 데다 정부의 해외 취업 지원 사업 또한 기준 등이 모호하다"며 "게다가 해외에 체류하며 외국어로 일하는 게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경력직 선호가 빚은 '웃픈' 현실

한국의 20~30대 청춘들이 취업난에 허덕이며 해외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은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만만치 않은 벽에 부닥친다. 채용된 후에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이들이 해외 취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요즘 기업에서 경력직을 선호하다 보니 젊은 구직자들이 국내 기업에 들어갈 때 '화려한 스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해외 취업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청춘들이 한국에서 직장을 잡기 위해 해외에서 경력을 쌓는 모습은 극심한 취업난이 빚어낸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실'이다.

해외 취업 성공 위한 '팁'

해외 취업자들은 어떻게든 버텨서 화려한 경력을 쌓길 바라겠지만 해외 취업 근속연수는 1년 내외가 대다수다. 현지에서 취업비자를 받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취업비자를 받아서 해외에 취업하는 경우는 일본과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드물다. 대부분 1년 정도 일해보고 고용주가 취업비자를 발급해줄지를 결정하게 된다. 해외 고용주가 수천만 원에 가까운 비용을 대고 고용인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외에 대한 동경만으로는 해외 취업에서 원하는 결실을 이룰 수 없다. 체계적인 준비 없이 '언어를 배우기 위해' '그 나라가 좋아서' 등 막연한 생각으로 뛰어든 해외 취업은 실패로 끝나기 십상이다. 국내 한 대기업의 중국 법인에서 인사 담당자로 근무 중인 이승진씨는 "우리 회사만 해도 (한국인 취업자 중) 중국에서 대학을 나온 인력이 60% 이상이며 30% 정도는 중국 유학 경험이 있다. 나머지 10%는 중국과 관련된 경험을 가지고 한국에서 파견 나온 인력"이라며 "중국에 대해 아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중국 법인에 채용돼 오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국가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가 채용 시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귀띔했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는 해당 나라의 기업 문화를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GIC의 김재헌 팀장은 "일본의 경우 아침에 30분간 조례를 한다. 또 다른 직원들의 업무 외적인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된다. 가령 점심시간은 온전히 직원 개인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막연하게 해외 취업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 문화·언어·국가 속성 등에 대해 사전에 많은 조사를 한 다음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취업하려는 회사의 이력과 근무 조건을 충분히 알아보고 취업하는 것이 좋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해외 취업자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고용주들이 있다. 때문에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이력이 있는 회사는 피해야 한다. 고용계약서도 확실히 받아둘 필요가 있다. 그 안에 담긴 급여·복지 같은 근무 조건과 근무 기간, 위약금 등 계약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대다수 나라에서는 정규 근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근무할 때 1.5배 정도의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자.

조현주 기자·조아라 인턴기자 / ch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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