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애국자라면 아이폰 쓰지 마라" - 中 환구시보

임상범 기자 2014. 7. 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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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현대전의 관건은 정보통신전이고, 현대산업의 총아는 정보통신산업'이라는 등식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상식과도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갈수록 치열한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는 기존 헤게모니 미국과 떠오르는 헤게모니 중국 간에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살벌하기까지 합니다.

꼬투리만 잡으면 서로가 도청과 해킹의 피해자라며 상대방을 비난하는가 하면 상대국 사람들에게 산업스파이나 불법해커의 혐의를 씌워 국외 추방은 물론 형사 기소도 불사하고 있습니다. 양국 언론들이 앞장서 '국가 안보'라는 전가의 보도를 앞세워 비방전을 벌이는 통에 다른 주장이나 해명은 설 자리 조차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공산당의 입인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자매지로 '애국자'를 자처하는 극우 성향의 논조로 유명한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미국 애플사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논평을 게재했습니다. 환구시보가 아이폰에 태클을 걸면서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산당과 국무원을 포함한 정부기관, 인민해방군 등 국가 영도 기관 소속 이른바 공직자들이 아이폰을 쓰다가 미국 정보 당국의 도청과 통신 데이터 감시의 제물이 될 수 있는 만큼 국가 안위와 관련된 중요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이폰을 절대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논평은 아이폰이 사용자들의 문자메시지, 사진, 통화기록 등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비공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아이폰의 이 기술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아이폰을 사용하는 중국 공직자들간에 오가는 정보 내용이 고스란히 미국 정보 당국의 손아귀로 흘러가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애플 측에 사용자 개인정보 보안 문제에 대해 해명하도록 요구해야한다고 압박하던 환구시보는 급기야 국가의 녹을 먹는 당, 정, 군 소속인이라면 애플을 포함한 외국산 휴대전화를 버리고 반드시 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8천3백만 명에 육박하는 공산당원과 5천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에 인민해방군 2백30만 명까지 더하면 1억3천5백만 명입니다.

일본 인구를 간단히 넘어서는 대규모 소비 집단에 대해 관영 언론사가 총대를 메고 공정무역과는 사뭇 거리가 먼 일종의 '애국심 호소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직설 화법은 아니었지만 요즘 한창 잘 나간다는 자국 스마트폰 샤오미(小米)로 갈아타라는 은밀한 '국산품 장려 운동'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미국 정보당국이나 애플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황당할 법도 하겠지만 얼마 전 일어났던 '화웨이(華爲) 사건'을 돌이켜본다면 환구시보의 억지스러운 호들갑도 일견 이해가 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화웨이 사건의 전말을 간략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중국의 대형 통신기기 업체인 화웨이는 미국이나 유럽, 한국 등 통신기기 선진국들의 상품에 비해 훨씬 저렴한 제품들을 잇따라 시장에 출시하면서 특히 미국 내에서 마켓 쉐어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 화웨이에 대해 올해 초 미국 정부가 칼을 빼 들었습니다. 뽑아 든 칼은 역시나 전가의 보도인 '국가 안보'였는데 이유는 화웨이가 미국에서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미국 당국이 내놓은 근거는 이렇습니다. 화웨이의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올해 70세) 회장이 1970년대 인민해방군에서 일했던 기술자 출신이라 런 회장이 미국 정보나 국방 당국에 대한 중국의 해킹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런 회장은 인민해방군에서 복무하다 통신업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유명한데 그의 성공담을 다룬 [군인회장: 보통사병에서 통신 패왕까지]라는 제목의 책은 중국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로 그의 군 출신 이력은 누구나 다 아는 전혀 새롭지 않은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런 이유를 들어 호주 정부로 하여금 광대역 인터넷 입찰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도록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우방국 한국에게도 중국의 도, 감청이나 해킹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주한 미군과의 통신용 장비에 화웨이 제품 사용을 전면 금지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인민해방군 전력자가 회장으로 앉아 있는 회사이니 만큼 이러한 혐의에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논리였습니다.

세계적인 통신 기업을 중국 정보 당국의 2중대쯤으로 몰아붙이던 미국은 얼마 후 호되게 반격을 당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독일의 슈피겔 등 유력 언론들은 미국 NSA가 중국 선전에 있는 화웨이 본사의 전산망을 해킹하고 런 회장 등 경영진의 통신 내용을 감시해왔다는 폭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NSA의 이 비밀프로젝트의 이름은 '샷자이언트(Shot-Giant)'! 거인이 된 중국을 저격하겠다는 뜻입니다. 화웨이가 스파이 기업이라고 우기던 미국의 주장과 달리 현실은 정반대였던 겁니다.

궁지에 몰린 미국은 화웨이가 정말 스파이 기업인지 알아보기 위해 감시해왔던 것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왔습니다만 '스노든 사건'에 이어 다시 한 번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 술 더 떠 미국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이용해 파키스탄이나 이란 정부와 정보기관을 해킹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던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반격에 재 반격이 이어지며 한 치의 양보없이 전개되는 중미간 정보통신 각축전의 와중에 샤오미 등 후발 주자들의 거센 도전까지 뿌리치며 힘겹게 스마트폰 시장을 지켜내야 하는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전략과 셈법은 그 어느 때보다 주도면밀하고 치밀해야 할 것입니다.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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