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세월호 의인 "아직도.."

2014. 7. 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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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월호 선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동수씨

"사고 후 아이들 생각에 목욕탕 물에 못 들어가"

23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한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김동수(52·화물차 기사·제주시)씨는 "나도 죄인이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3층 객실에서 난간대를 잡고 갑판으로 올라가 배에 있던 소방호스를 풀어 4층으로 내려가 단원고 학생들을 구했던 그는 "침몰하는 배 안에서 학생들이 객실 창문을 두들기는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꿈에도 생각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지금도 버스 창문을 보면 (학생들에게) '뛰어내려'라고 말한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제 자신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도 동서가 헷갈리고요."

김씨는 사고 이후 여전히 '살아남은 자의 고통' 속에 갇혀 있다. 그는 "손과 발 등 뼈마디가 찢어지게 통증이 오는데도 병원에선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몸무게도 5㎏이나 빠졌고, 생업인 운전을 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사고 이후 사우나장에 갔는데 차가운 물에 있을 아이들 생각이 나 뜨거운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김씨는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뒤 방청석을 향해 돌아선 뒤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희생자 유족들에게 인사했다. 검찰이 사고 당시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세월호 우현 갑판에 먼저 올라왔기 때문에 쉽게 구조를 받을 수 있었는데 왜 그대로 서 계셨는가?"라고 물었다. 김씨는 "제 딸이 고교 2학년생이다. '아, 우리 딸이 이렇게 되면 누가 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생각없이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옆에서 누군가 도와줘서 (아이들에게) 나오라고만 했어도 이렇게 큰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재판 과정에서 참사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던 이준석(68) 선장 등 선원들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김씨의 증언을 들었다.

광주지법 형사11부 임정엽 재판장은 이날 김씨에게 "증인처럼 용감한 사람 보기 어려웠습니다. 재판부도 동영상을 보면서 소방호스로 구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감탄했습니다"고 말했다. "우리들이 본 사람 중 가장 책임감 강한 분이십니다. 사람들을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신적 고통을 받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래도 많이 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박현정 <한겨레21>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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