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바닷속에 10명이..가족들 '100년 같은 100일'

2014. 7. 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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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월호 참사 100일 팽목항 르포]

아침마다 밥 차리는 지현이 엄마 "딸이 배고파 못 나오나…"

급성폐렴 온 현철이 아빠는 "쓰러지더라도 아이 건지고…"

단원고 교사 남편 기다리는 아내, 링거로 버텨 팔에 멍투성이

부모는 먼저 아이를 찾아 체육관을 떠난 이들의 자리로 매트를 옮기고, 다시 옮겼다. 그 자리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엄마가 바지선을 타면 아이를 찾는다는 말에도 귀가 솔깃했다. 링거를 맞던 몸으로 아빠 대신 출렁이는 바지선에 올랐다. 그래도 착한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상한 남편도, 어머니도 돌아오지 않았다.

24일, 세월호 침몰 사고 100일을 맞았다. 진도 팽목항에는 바다를 향해 '이제는 집에 가자'며 달래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남은 실종자 10명, 그 가족들의 애끊는 이야기다.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황지현(17)양의 어머니 신명섭(49)씨는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지현이에게 아침밥을 주기 위해 어김없이 팽목항으로 간다. 벌써 열흘이 넘었다. "김하고 계란프라이를 했어요. 딸이 안 나오니까 별짓 다 하는 거죠. 배가 고파서 못 나오는가 해서요." 엄마가 지어준 아침밥 먹고 기운 차린 딸이 차가운 바닷물과 뻘을 헤치고 어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현이는 결혼 7년 만에 낳은 외둥이다. 지현이는 신씨 부부에게 17년의 행복을 주고 떠났다.

허흥환(50)씨에게 딸 허다윤(17)양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이었던 딸"이었다. "성격이 내성적이었어요. 제주도 수학여행도 안 가려고 했죠. 안 가겠다고 버티는 애한테 가서 친구들도 좀더 사귀고 스트레스도 풀고 오라고 했어요. 마지못해 간 건데…." 입만 열면 감동이었던 딸은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단원고 교사 양승진(57)씨의 아내 유백형(53)씨는 지난 22일 숟가락을 두 번 정도 들고는 아침식사를 마쳤다. "먹을 수가 없어요." 100일 동안 안산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진도체육관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유씨는 남편의 캐리커처 액자를 늘 머리맡에 두고 잔다. 진도 주민이자 화가인 김영주씨가 그려준 그림이다. "남편이 뱃멀미를 많이 하는데, 그래도 배로는 제주도에 처음 간다며 아이들처럼 좋아했어요. 떠나기 전날 옷이랑 세면도구며 다 챙겨 줬는데. 수업 끝나고 인천에 배 타러 간다고 오후 4시30분에 전화 온 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요."

기다리는 가족들은 마음도 몸도 많이 상했다. 유씨는 조금만 걸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지럽다. 평생 남의 일만 같았던 우울증도 생겼다고 했다. 날이 더워지며 탈진한 유씨는 링거를 10여차례 맞았다. "하도 많이 맞아서 혈관 자리를 찾을 수가 없대요. 팔뚝 전체가 멍 천지네요."

동생 권재근(52)씨와 조카 권혁규(6)군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권오복(59)씨도 불면증을 호소한다. "새벽 1시에도 잠을 못 자요. 그러고는 새벽 5시에 눈을 떠요. 온몸이 축 처지고 늘 피곤하죠." 그나마 베트남에서 온 제수씨 장례는 최근에 치렀다. 아직 찾지 못한 동생과 조카 혁규도 걱정이지만 세월호를 탔던 일가족 네 식구 중 혼자만 구조된 조카 지연(5)이 걱정이 크다.

단원고 학생 남현철(18)군의 아버지 남경원(45)씨는 급성폐렴으로 8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체육관으로 돌아왔지만 통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허흥환씨는 "여기에 몸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으론 다들 병들어 있다고 했다. "내가 쓰러지면 아이를 못 데리고 가니까 버티는 거죠. 나올 때까지 버텨야죠. 쓰러지더라도 아이를 건지고 나서 쓰러져야죠." 실종자 가족들이 주로 찾는 목포한국병원의 류재광 원장은 "날도 더워지고 장기간 스트레스에 지친 가족들이 최근 부쩍 많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침몰 94일째이던 지난 18일, 세월호 조리원 이아무개(56)씨의 주검이 발견됐다. 조리실에서 일하다 부상당했는데, 탈출하는 승무원들이 그냥 버려두고 나왔다던 그다. 단원고 교사 고창석(40)씨의 형수는 "주검을 찾은 가족들을 보며 '참 좋겠다.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검을 찾았다고 좋아하는 게, 그걸 부러워하는 이 현실이 말이 되느냐. 곤장 맞을 생각인데, 그걸 부러워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가 아직 도련님에게 닥친 일을 모르신다. '애한테서 왜 연락이 없냐'며 계속 찾으시는데 충격을 받으실까 말도 못 꺼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수색 작업도 줄어들까 걱정이다. 도련님을 찾을 기회를 놓칠까 두렵다"고 했다.

남은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도 '내가 마지막 차례가 되는 건 아닐까', 그걸 가장 두려워한다고 했다. 권오복씨는 "여기 있는 것도 힘들지만, 실종자 주검이 나올 때가 더 힘들다. 남은 실종자가 2명으로 줄고, 결국 내가 마지막까지 남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했다. "100일이라는 숫자는 연애할 때, 아이가 태어난 뒤에, 기분 좋은 일에나 세는 건 줄 알았다"는 실종자 가족들은 그렇게 100일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100일이다, 이제는 그만 집에 가자', 이들은 오늘도 마음속으로 이 말을 되뇌고 있다.

진도/김규남 이재욱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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