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일> '눈물의 항구' 팽목항 지금은

입력 2014. 7. 23. 06:02 수정 2014. 7. 2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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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실종자 10명 가족 간절한 기다림 지속 1천명 넘게 북적였던 항구·체육관엔 슬픈 적막도

마지막 실종자 10명 가족 간절한 기다림 지속

1천명 넘게 북적였던 항구·체육관엔 슬픈 적막도

(진도=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 속에서 무심히 오가는 경비정, 여객선만 희미하게 눈에 띄었다.

항구 멀리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경비정, 잠수사들의 모습도 안개에 갇혀 있다.

세월호 참사 99일째인 23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항구는 이날도 숨을 죽였다.

등대까지 150m가량 늘어선 난간에 매달린 작은 풍경,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승려의 목탁 소리가 정적을 깼다.

아들과 노부모의 손을 잡고 추모 길에 오른 중년 부부는 난간을 빼곡히 채운 노란 리본과 별 모양 메모판을 하나씩 들춰봤다.

"내 아들 할머니가 너 보고 싶어해. OOO 할머니 품으로", "딸 집에 가자. 사랑해. 미안하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가야 아빠랑 얼른 나와", "이제 뭍으로 나오렴.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하는 것 알지? 이제 안산 가자", "여보 오늘이 86일째, 얼른 나오세요. -아내-", "△△△ 선생님. ▲▲, ★★ 아빠 차디찬 바닷속에서 빨리 나오세요. 간절히 기도합니다. -당신의 아내-"

방파제 입구에 적힌 가족의 기도는 내용만으로도 누구의 부모, 아내, 큰아버지가 적은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00일 가까운 기다림은 서로 익숙하게 했다.

294명의 시신이 수습되면서 남은 실종자는 학생 5명, 교사 2명, 일반인 부자, 일반인 여성 등 10명으로 줄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승선 현황과 목격자 진술 등으로 미뤄 당시 선체 3층에 3명, 4층에 7명이 머물렀다고 보고 해당 구역을 집중적으로 수색하고 있다.

팽목항과 관매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항구에 닿았다. 예년 같으면 관매도 해수욕장을 오가는 피서객으로 가득했겠지만 봇짐을 든 할머니, 넓은 챙이 달린 밀짚모자를 쓴 피서객 등 몇몇이 전부다.

할머니는 바다 가장 가까이에 과자, 소시지, 음료수 등 아이들이 좋아했던 주전부리가 뜯기지 않은 채 놓인 제단을 무심히 바라보고는 갈길을 재촉했다.

"접근 및 사진 촬영 금지. 가족이 원치 않습니다."

방파제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실종자 가족의 임시 거처로 활용되는 조립식 주택, 자원봉사용 텐트가 늘어섰다.

시신 수습과 함께 가족들이 떠나면서 사고 직후 1천명이 넘게 북적였던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팽목을 지키는 사람들은 남아있다.

점심 급식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는 "요즘은 한 끼에 150인분 정도 식사를 준비한다"고 말했다.

의약품을 지원하는 약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과 자원봉사자의 피로가 쌓여 약을 찾는 분들이 많다"며 "가족들은 화를 누르지 못해 안정제를 주로 찾는다"고 전했다.

울분은 팽목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시신을 찾으면 슬픔을 억누르자고 다짐했던 유가족도 일상 복귀가 아직 어렵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당리당략에 휘둘려 공전하자 유가족은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단식에 나섰다.

김병권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장은 "대참사에도 정치권, 정부는 여전히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그 많은 아이들이 죽었는데도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따지는 모습에 너무 속이 상한다"고 털어놨다.

김 위원장은 "아이들(시신)을 수습하고 와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달라 했더니 국회의원들까지 (가족의) 진을 빼고 있다"며 "두달 전만 해도 난리가 난 듯하더니 금세 무뎌지고 잊혀져 '내 자식이냐? 네 자식이지' 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4월 16일 이후 나라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냐"고 반문했다.

수십년 다니던 직장에 출근했다가도 다시 길거리로 나서고만 유가족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그는 전했다.

도로 옆에 세워진 나무들도 하나같이 리본을 차고 있다. 팽목항에서 차로 20분을 달려 닿은 진도실내체육관 바닥에는 매트가 널려 있다.

정부는 에어컨이 있는 조립식 건물을 거처로 마련했지만 가족은 사고 직후 달려와 숙식을 해결했던 체육관을 떠날 수 없다.

체육관 옆 공설운동장에서는 내년 열리는 도민체전 준비에 중장비로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려와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초조하게 한다. 체육관을 비우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세월호 수색상황 소식이 뜸해진 뉴스에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체 발견 내용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가족들은 체육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무심하게 뉴스를 보고 있다. 체육관 앞마당 스크린에서는 깔깔거리는 예능 프로그램도 나온다.

실종자 가족들은 잊히는 게 두렵다.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는 권오복씨는 "지금까지 오직 인내로 기다리고 있다.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권씨는 "(실종자를) 찾는 것 말고는 어떤 바람도 없고 찾을 때까지 이곳을 지키겠다"며 "우리 마음을 이해해달라고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유가족을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엄마부대를 보고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한 자원봉사자는 "체육관에 깔린 매트, 모포, 이불을 꺼내 햇볕에 말릴 때마다 가족들의 마음에도 볕이 들 날이 빨리 왔으면 하고 기원한다"며 "마지막 한 명을 찾을 때까지 모든 국민이 같은 마음으로 성원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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