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가 나타났다..팽목항에 생기가 돌았다

진도 2014. 5. 22.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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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팽목항 장기자원봉사자 신은혜씨, 교통사고·암투병의 아픔 봉사로 이겨내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기자][[세월호 참사]팽목항 장기자원봉사자 신은혜씨, 교통사고·암투병의 아픔 봉사로 이겨내]

진도 팽목항에서 한 달간 자원봉사를 마친 후 안산 집으로 올라간 '왕언니' 신은혜씨가 사흘 만인 지난 19일 오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박소연 기자

'왕언니'가 나타났다. 그가 팽목항에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천막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와 한 마디씩 던졌다. "아니 쉬라고 보냈더니 왜 또 왔대." "잘 왔어요. 왕언니가 가니 팽목항이 썰렁했어."

지난 19일 오후, 적막한 팽목항에 일순간 엔도르핀이 돌았다. 이곳에서 한 달간 자원봉사를 마친 후 안산 집으로 올라간 '왕언니' 신은혜씨(58·여)가 사흘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 사람들의 표정에서 어쩔 수 없는 반가움이 묻어났다.

"16일에 집에 갔는데 하루 종일 TV 채널 돌리는 게 일이었죠. 팽목항에 무슨 변화는 없나,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나 찾아보고. 몸은 올라왔지만. 마음은 여기 두고 갔던 거죠." 그는 안산에서도 가족들 장례식장을 돌았다. 오매불망 팽목항을 그리던 신씨는 이날 이동식 조립주택이 설치된다는 소식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한걸음에 내려왔다.

안산시자원봉사센터에 가입돼있던 신씨는 사고 다음날 부리나케 진도로 내려와 꼬박 한 달을 봉사했다. 그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어디든 갈 준비가 돼 있었다. 가요강사와 노래·웃음치료 강사로서 누구보다 재기발랄하게 사는 그지만, 남다른 불운의 곡절을 겪으며 '아픔'을 누구보다 잘 공감하는 터다.

인생의 전환점은 '교통사고'와 함께 찾아왔다. 2008년 어느 날, 승용차가 인도에 서 있던 신씨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다리와 허리, 목을 수차례 수술받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만성통증 증후군을 크게 앓았다. 3년간 병원신세를 졌다.

후유증과 스트레스는 '독'이 됐다. 2012년 신씨는 직장암과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11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공포의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신씨는 "그 때만 해도 암 걸리면 다 죽는다고 생각했다"며 "밥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안 잘 수도 없는 극도의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아픔은 그를 성숙시켰다. 사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남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파보니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만 산 것 같은 반성이 들었다. 지난해부터 신씨는 요양원과 양로원, 암 병동에서 노인과 환자 등을 대상으로 무료 웃음치료·노래 강의를 진행 중이다.

"난 봉사 말고 다른 단어가 있다면 쓰고 싶어요. 내가 하면서 기쁘고, 받는 분들이 좋아하시는 걸 보며 또 내가 위안을 받으니 난 봉사하는 게 아니라 '힐링'을 받는 거거든요."

팽목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로 다 못할 비극의 현장이지만, 이곳에서 신씨는 가족들과 서로 보듬으며, 함께 끌어안고 울고 웃으며 '힐링'을 주고받았다. 가족숙소와 검안소 책임자였던 그는 천막 정비와 청소, 구호물품 배분 등 실종자 가족들의 생활 전반을 도왔다. 1박2일씩 새로 오는 봉사자들 인솔도 그의 몫. 밤샘은 일상이었고 잠시 누울 시간조차 없이 온종일 팽목항을 뛰어다니느라 발은 물집 투성이었다.

"내가 책임자로서 다른 사람을 시키려면 발로 뛰고 수십 배의 열정을 보여야죠. 그래야 날 따라주는 거예요."

사고로 극도의 충격과 아픔을 겪은 가족들은 예민한 상태였다. 하지만 희망이 절망, 포기로 이어지는 긴 날들을 통과하며 신씨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됐다. "처음엔 경황이 없어 그게 봉사인 줄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참 의지가 되고 감사했다고, 장례 치르면 봉사하며 살겠다고 하셨어요."

신씨는 가족들의 거절에도 끈질기게 음식을 권하고 냉장고도 들이는 등 가족들 편의를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끝까지 걸렸던 게 가족 숙소. 신씨는 떠나기 며칠 전, 폭우에 뽑힐 것 같은 천막 기둥을 밤새 봉사자들과 붙들고 펑펑 울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하늘과 땅이 꺼지는 고통을 겪는 분들인데 이런 것까지 겪어야 하나 눈물이 났어요. 바다 속 자식 생각에 편안도 거절하는 분들이지만 단 하루를 있어도 편히 계셨으면 좋겠거든요. 자식들도 내 부모가 이렇게 열악한 데서 생활하는 걸 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신씨가 이별을 예고하자 많은 이들이 송별회를 해줬다. '왕언니 갈 때 다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가족들. 거짓말처럼 그가 떠나기 전날인 15일, 희생자가 5명이나 발견됐다. 신씨는 "내가 진작 갈걸 그랬다"며 얼싸안고 울었다.

신씨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직 남은 실종자들이 눈에 밟히지만, 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들과의 우정과 봉사를 이어가려 한다. 암수술 후 3년이 흐른 지금은 여전히 재발위험이 높은 시기지만 그는 한 달의 봉사를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의사는 무조건 몸조심하라고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 아닌가요? 내가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도움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내 행복입니다. 날 필요로 한다면 당장 달려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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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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