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여행' 오명 수학여행.. 존폐·보완 기로에 섰다

2014. 4. 21. 02: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수학여행 시즌을 앞두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자 수학여행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학여행과 수련활동 등 학교별로 단체로 이동하는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는 대형 사고로 얼룩지고 있기 때문이다.

◇침몰·익사·교통사고…. 끊이지 않는 수학여행 사고들=진도 참사에 앞서 지난해 7월 18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해수욕장 일대에서는 공주사대부고 학생 198명이 수련활동의 일환으로 사설 해병캠프에 참가했다가 파도에 휩쓸려 학생 5명이 숨졌다.

지난 3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국도 6호선에서는 부산 경남중 학생과 교직원을 태운 수학여행 관광버스 3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나 학생 2명이 코뼈가 부러지는 등 학생과 교직원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0년 7월 14일에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1차로를 달리던 부산 부일외고 1학년 수학여행단을 태운 관광버스 등 버스 4대가 승용차 등 차량 5대와 연쇄 추돌해 학생 13명 등 18명이 숨지고 97명이 다쳤다.

실제 통계에서도 본격적인 수학여행 시즌에 교통사고가 급증했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전세버스 사고 통계 9465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봄철(3∼5월) 전세버스 사고 비중은 36.5%(559건)로 겨울철(12∼2월) 비중 20.9%(320건)보다 15.6% 포인트 높았다. 특히 전세버스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4월로, 월평균 사고건수 비중이 15.9%에 달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며 학부모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강모(46·여)씨는 "이번 달 말에 아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진도 여객선 참사 사건을 접하니 덜컥 겁이 난다. 수학여행을 보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여행 사고위험 노출될 수밖에 없어=숙박 등을 통해 단체생활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수학여행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일본 제국주의 교육의 잔재라는 일각의 비판 속에서도 현재 대다수 초·중·고교가 시행하고 있다.

학교들이 대규모 단체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로는 비용 절감이 꼽힌다.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박리다매(薄利多賣)' 원칙에 따라 학교들을 유치하고 있어 이왕이면 많은 인원이 참여시키는 것이 학교나 수학여행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이익인 구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조 전북지부 오동선 정책국장은 "많은 인원이 갈수록 여행사 등에서 큰 폭으로 할인을 받는 까닭에 학년 단위로 수학여행을 진행하는 학교들이 많다"는 설명했다.

교육부가 지난 2월 일선 시·도교육청으로 보낸 '수학여행·수련활동 운영 안내' 지침에서 수학여행 참여 인원을 '4학급 또는 150명 내외'로 정해놨지만 제대로 지키는 학교가 드문 것도 바로 비용 문제 때문이다. 이번 단원고의 수학여행에도 학생 325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수학여행은 항상 사고 위험을 동반하고 있으며, 그 사고에 따른 대형 인명피해도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몇 백 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통솔하기엔 교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교육 당국의 안전대책 역시 미흡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부 지침에는 대형 버스 등 운전자 적격 여부, 전세버스 교통안전 정보, 학생 안전교육 등 자동차에 대한 안전 매뉴얼만 있을 뿐 선박이나 비행기 등에 대한 지침은 없다. 특히 세월호 같은 숙박시설이 있는 선박의 경우 객실별 대피 통로와 출입구의 사전 확인, 구명조끼를 포함한 안전장비 확인 등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누락돼 있다.

또 선박의 경우 교사가 한 공간에서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전에 학생들에 대한 안전교육도 중요하지만 이 역시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고교에 20년 넘게 재직하고 있는 김모(49) 교사는 "지난 20년 동안 수학여행에서 음주사고, 추락사고, 교통사고 등 각종 안전사고를 수도 없이 겪어왔다"며 "학생 수에 비해 이를 통제할 지도 인력과 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사고가 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무엇보다 수학여행이 위험한 이유는 '리스크 헤징'(위험회피)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분산된 방식의 여행 운영이 필요했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에서 일제 때부터 형성된 이런 유폐를 아직까지 떨치지 못하기 때문에 대형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 장병문 회장은 "(비용과 안전 등) 문제가 있다면 대규모 단체여행을 아예 진행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며 "사고 위험을 줄이면서도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급별 테마여행·진로체험이 대안으로 떠올라=연이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은 점차 '비싸고 먼 지역'으로 가는 것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2012년 사이 전국 615개 초·중·고 소속 학생 중 약 12만3000여명이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해외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진도 사고를 계기로 한번에 많은 인원이 단체여행을 가는 '소몰이식' 수학여행 대신 학급 단위로 주제를 정해 떠나는 테마여행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규모 인원을 교사들이 통제 가능한 인원으로 쪼개 안전사고 위험을 줄이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수원 수일중학교는 지난해부터 1∼2학년은 진로탐색여행, 3학년은 대학 탐방으로 수학여행을 대신하고 있다. 1∼2학년은 외부 강사를 초빙해 진로적성검사를 받게 한 뒤 검사 결과를 토대로 담임교사와 토의를 거쳐 국회 법원 방송국 등 장소를 정해 학급별로 진로탐색여행을 떠나고 3학년 역시 학급별로 다른 대학교 탐방에 나서는 식이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기존 수학여행은 학생 수만큼 변수도 많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며 "학급 단위로 주제를 정해 떠나는 테마여행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운택 경기도교육청 교수학습과장은 "건강 문제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원이 참석해야 하는 분위기도 문제가 있다"며 "학생 개인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보장해 참석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 쿠키뉴스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 쿠키뉴스(kuki@kmib.co.kr)/전화:02-781-9711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