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 법을 못 배운 청춘들의 '이별 폭력'

2014. 4. 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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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대 연인들 배신 상처 극복 못해

수은 테러·협박에 실제 살해까지

증오로 자해하다 상담소 찾기도

전문가들 "자기중심적 성장으로자존심 상처 때 견디는 능력 낮아"

대학생 최수현(가명·24)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연애 카운슬러'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1년 넘게 사귀어온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이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차마 여자친구를 해칠 수는 없었다. 대신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했다. 집 안 가스레인지 밸브를 열어두고 잠들었지만 '실패'했다. 최씨는 상담을 받고 있는 지금도 매일 밤 잠들기 전이면 여자친구에 대한 증오와 그리움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20대 젊은 연인들 사이에 '이별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애의 기술'을 알려주는 곳이 많은 '연애 과잉 시대'에 배신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청춘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표 성취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가 청춘들의 연애와 이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단이다.

1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도서관 고시생 열람실의 손아무개(26)씨 책상 주변에서 수은으로 추정되는 물질 20g 정도가 발견됐다. 도서관 출입구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에 손씨의 헤어진 남자친구 조아무개(28)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찍혔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그의 행방을 쫓고 있지만 잠적한 상태다.

앞서 서울 수서경찰서는 살인예비 혐의를 적용해 박아무개(22)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박씨는 지난달 27일 새벽 헤어진 여자친구 신아무개(22)씨한테 전화를 걸어 "새로운 남자친구를 죽이겠다" "성관계 동영상과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뿌리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사고 있다. 경찰이 박씨를 붙잡았을 때 그의 가방에는 31㎝ 길이의 흉기와 기름, 라이터, 신씨의 알몸 사진이 담긴 유에스비(USB)가 있었다. 박씨는 전과도 없는 평범한 남자였다. 지난해 12월에는 대학생 이아무개(20)씨가 헤어진 여자친구 황아무개(21)씨를 목 졸라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씨는 오는 29일 1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는 16일 이런 현상을 두고 '자기애 과잉 시대'라고 분석했다. 하 교수는 "보통 20대에 연애를 시작하면서 인간관계를 배워가기 시작하는데, 10대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채 가정 안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때 견디는 능력도 떨어지고, 남녀 사이처럼 특수한 관계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공격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했다.

어른들의 '끝사랑'이 종종 '치정 범죄'로 번지듯이 '이별 범죄'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개인차가 큰 만큼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설에 나타난 사랑의 심리를 분석한 <서가의 연인들>을 쓴 박수현 문학평론가는 "나이를 불문하고 이별을 할 때는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도록 성찰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다만 요즘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그런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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