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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논쟁

[스크랩] 김두환,김을동,송일국은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 아니다.

작성자天風道人|작성시간13.09.13|조회수632,338 목록 댓글 11

김을동이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라고?

 

신화는 두세대만 지나면 날조가 가능하다.


<앞부분은 생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설은 4,50년만 지나면 날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내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 드라마에서 김두한이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 나옵니다.

이거.. 이거를 사실로 믿으십니까?
쌩거짓말이죠. 1940년대 당시 일제 치하이던 시절, 그 흉흉하던 시절에 수표교 다리밑의 거지이던 한 건달이 자기가 김좌진장군의 아들이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당근 당시 사람들은 상대도 안해줬죠. 왈가왈부할 가치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6.25동란을 거치면서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그런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못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두 세대가 지난 오늘, 버젓이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전국으로 방영이 됩니다.

이제는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마 그럴테지 하고 생각할 뿐. 지금 사람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이미 오래된(적어도 2세대) 전설이니까요.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사람들은 그 사실 자체보다는 독립군 장군의 아들이 거지로 살다가 주먹계의 대부가 되는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즐기게` 되었다는 겁니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거죠. 영웅이야기에는 그 영웅의 사실여부는 중요치 않으니까요. 그 영웅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자신감과 카타르시스를 주느냐가 더 중요하죠.

이렇듯.. 신화란 것은 금방 조작이 가능한 겁니다. 김일성도 당대에 신화를 만들어냈죠. 아마 70이상 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진실로 믿을 겁니다. 나뭇잎 타고 대동강 건넌 얘기를. 아빠,엄마 할 때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 테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그 이야기를 부정하는 어떤 말도,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는 환경에 살고 있으니까요.

<뒷부분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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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1889.11~1930.1)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6일간 지속됨)

1930년 1월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함.

 

 

 

일본 천황의 생일을 맞아 조선일보가 내놓은 사설을 보자면...
" 천황폐하의 생일을 맞아 모든 신하와 백성이 경축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것이다...천황폐하께서 옥체가 건강하시니 실로 황공하고 경할뿐이다...앞으로 충성과 의를 다하여 일념으로 천황폐하와 일본제국에 보답하겠다 " 라고 되있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고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일본에 충성하던 극악한 매국 역적 신문으로 일본 총독부의 철저한 검열에 의해 기사를 송고하던 시절이었으며 

 청산리 대첩이 1920년 10월 일어난 이후 김좌진 장군에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던 시절로 국내의 독립군 연결조직과 군자금 모금책등을 검거하기 위해 일제가 혈안이 된 시점이었다.

 

 

 


 

 

 

 

 

 

다음은 김좌진 장군이 암살당한 직후 (1930년 1월 암살당함) 북로군정서의 잔존세력이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함경북도등지에 주제소등을 습격하던 당시의 시절에 실린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기사이다.

 

김계월(1904년생)

 

 

 

 

 

해석 

(1) 김옥균 1851.1.23∼1894.3.28,   1884년 갑신정변 실패로 일본 망명.1894년 3월 홍종우에 의해서 암살되다.
(2) 김좌진 1889.12.16∼1930.1.24,  1920년 10월 청산리 대첩,             1930년 1월 박상실에 의해서 암살되다.

(3) 김두한 1918.5     ∼1972.11.21

 

김두한의 주장----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자로 들어갔음.

7세때 청산리 대첩 발발 외조모 모친은 투옥 되어 고아됨, 10세때 부친 김좌진 별세함.

 

하지만

김옥균은 일본에1884년부터 망명중이었고 1894년 일본에서 암살당함, 김좌진은 1889년 충남홍성에서 태어남. 따라서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자로 들어갔다는 주장은 날조된 거짓말.

김두한은 1918년생. 청산리대첩때 김두한 나이는 3세여야 함. 따라서 7세때라는건 날조된 거짓말.

김좌진 장군이 별세한때는 청산리 대첩 발발 10년후인 13세때여야함. 따라서 청산리 대첩 발발 3년 후인 10세에 김좌진이 별세했다는 주장은 날조된 거짓말.

 

이외에도 조선총독부가 만들어낸 기생모친이 맘에 결렸던지

김두한은 상궁의 딸이라는 해괴한 여인을 등장시킴. 그 여인이 김두한의 생모라고 주장.

그럼 상궁은 딸을 1880년 말~1890년 초에 낳았어야 함. (김두한과 나이차를 따져보면 상궁의 딸 김계월은 1904년이전 출생이어야 함)

 

하지만

그래...그냥 백번 양보해서 그래 그 무슨 상궁이라고 쳐도

조선 시대에 궁에 일단 들어가면 상궁이든 뭐든 궁녀는 죽어서야 궁 밖을 나옴. 상궁이 저 시기에 딸을 낳았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

그래 더 백번 양보해서 1910년 국권 강탈후 나라가 망해 궁궐의 궁녀를 밖으로 내보내면서 상궁이 밖의 사람이 되서 딸을 낳았다고 쳐도 그럼 상궁의 딸은 1918년에 기껏해야 몇 살 인데... 그때 김두한이 출생했다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날조의 연속...  아무리 망해가는 조선 왕조의 상궁이라고 해도
상궁이 딸 가졌다는 이런 해괴한 소리도 내 김두한이한테서 처음 듣는다. 또 양녀라고 할 텐가? 김두한의 글 일일이 따지자면 횡설수설과 황당무계 궤변의 연속이지만 이 정도로 해두겠다.**

 

  


김좌진은 18세에 자기집의 모든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들을 해방시켜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일찌감치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에 투신을 하였으니 오랜세월 고향과는 멀리 떨어져 연락이 두절이 되었었죠.  김좌진은 일본의 조장으로 더격해진 갈등속에서 공산주의자의 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자기에게 김두한이라는 아들이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사실 김두한은 김좌진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충남 홍성출신인 김좌진과는 달리 김두한은 서울출신의 고아였습니다.  자기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김두한은 어려서부터 거지들과 어울려다니면서 거지생활로 유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김좌진 장군 후손이라는 후광으로 한국에서 유명세 위세를 떨치고 정치판까지 진출해 경제적으로도 잘사는 김을동은 김좌진 장군의 진짜 후손이 확실한 분이(대부분 독립운동가들 후손들이 그러하듯) 한국 국적도 얻지 못하고 밑바닥 생활을 하는데 모른체 한다고 함.

 

 

 

 김두한이가 안동김씨 족보에 오른것은 바로 그가 안동김씨문중에 가서 애걸반 협박반으로 뗑깡을 부려서 호적에 억지로 이름을 올린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때문에 안동김씨 종친회에서는 골머리를 앓았었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이 안동김씨문중에 있으니 확인을 할 수도 있답니다. 유명한 깡패 주먹계출신에 이승만을 등에업고 정치판에서도 위세가 대단했으니...다만 이후로 김두한이 안동김씨를 내세우면서 국회의원도 하고 영웅처럼 묘사가 되면서 사회에 부각이 되니 안동김씨문중에서는 유야무야 침묵을 지키는 것이라더군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맨 처음 김좌진과 전혀 연관없는 기생,김두한을 장군의 가족으로 연출해냈음. 그리고 총독부의 지시에 충성하는 조선 동아일보가 (김좌진 장군 암살직후) 그 날조기사를 확대재생산했음. 이후 김두한이 자작해서 상궁의 딸이라는 여인을 등장시켜 모친이라고 주장함. 김계월의 실제 존재 유무도 아무런 근거,증언,자료도 없음.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자로 들어갔다는 주장도 김두한만이 주장하는 것임. 김두한이 김좌진 아들이라는 주장의 원천은 조선총독부의 날조 기사물에 김두한의 횡설수설하는 입이 전부임. 김좌진 장군이 김두한의 친아버지란 증거는 단 한개도 없습니다. 


 

 


몇년전

김을동은 김좌진 장군의 진짜 후손들과의 DNA검사를 거부하였습니다.

 

출처:http://blog.daum.net/sorkeoakdhkd/7559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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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天風道人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8.22 [탤렌트에서 업종 전환하니 이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송일국의 자녀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당신의 아들이나 손자든 손녀든 죽어봐야 그 맘을 알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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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송파병에 출마, 24년간 야당 텃밭이었던 지역에서 첫 승리를 거둬 '새누리당광개토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인사할 때 '충성'을 외치며 거수경례하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이다.
  • 작성자天風道人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8.21 김을동 최고위원은 "오는 15일 제69주년 광복절을 맞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에서 '일제침략만행사진전 세계순회전 중국 하얼빈전(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주최)'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진전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막는 것이 동양의 평화를 주창하셨던 안 의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것"이라며 "인류사적 재앙이 또다시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중국을 비롯한 태평양전쟁 동아시아피해국가들과 계속해서 공조를 이뤄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작성자天風道人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8.22 어제, 오늘 SNS를 뜨겁게 달군 건 바로 '거수 경례'였습니다.
    군인도 아니고 군사 독재 국가도 아닌데, 거수 경례라니. 대통령에게 충성하라고 국회의원 시킨 게 아닙니다.
    논란이 된 인물, 그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자리를 꿰찬 김을동 최고위원입니다.
    어제 청와대에서 신임 지도부 오찬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김 최고위원이 박 대통령에게 난데 없이 거수 경례를 올린 거죠. 과한 행동 때문에 괜한 구설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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