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손 떼는 SK컴즈..통신사 틀에 갇혀 모바일 못 따라가

입력 2013. 12. 16. 09:25 수정 2013. 12. 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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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SK플래닛으로부터 온 경영진에게는 회사의 장기 발전 전략과 비전이 없었다. 라이코스, 싸이월드, 이글루스 등 당대 가장 잘나갔던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을 인수했지만, 모두 사라졌다. SK란 간판을 믿고 들어온 직원들만 피해를 봤다. 회사는 조만간 정리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SK커뮤니케이션즈(이하 SK컴즈) 한 내부 직원의 토로다.

싸이월드와 네이트온 메신저로 유명했던 SK컴즈가 분해되고 있다. SK컴즈는 대표 서비스인 싸이월드와 싸이메라 조직을 분사하고 네이트 검색을 사실상 종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12월 13일까지 희망퇴직을 접수받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진행한다.

회사 내부 직원들은 SK플래닛, SK텔레콤 출신 경영진들의 전문성 부족과 미흡한 대응으로 한때 최고 다크호스였던 SK컴즈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성토한다. 일부 직원들은 SK플래닛과의 합병을 통해 마지막 회생 가능성을 기대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사라진 상황이다. SK컴즈가 SK플래닛과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거래소 조회 공시를 통해 즉각 부인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SK컴즈가 몸집을 최대한 줄여 외부 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SK컴즈는 12월 3일 직원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싸이월드'를 종업원 인수(EBO·Employee Buy Out) 방식으로 분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동운 현 SK컴즈 태스크포스(TF)장이 일부 금액을 출자해 새로운 싸이월드 사령탑을 맡고 내년 1월 벤처회사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EBO는 회사 구성원들이 각자 임금과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거나 개인 자금을 투자해 공동 출자 형태로 분리된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미국 항공사 '유나이티드항공(UA)'이 종업원 인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SK컴즈는 올해 3분기 매출액 319억원, 영업손실 93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8분기 연속 적자다. SK컴즈는 현재 사업 구조와 인력 규모로는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회사의 얼굴인 '싸이월드' 분사 결정을 내렸다. SK컴즈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가 인터넷 사업을 하는 것은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등 여러 장애물이 많았다. 싸이월드가 네이버, 카카오톡 등과 제휴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싶어도 원활히 추진되지 못했다. 분사는 회사의 마지막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싸이월드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50여명. SK컴즈는 이들 외 전 직원을 대상으로 EBO 설명회를 개최하고 희망퇴직금 외에 정착지원금을 통해 분사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SK컴즈는 지난해 말에도 구조조정을 단행해 전체 약 20%에 해당하는 200~250명을 희망퇴직을 통해 내보냈다. 한때 1300여명에 육박했던 SK컴즈의 현재 직원 숫자는 약 750명. 업계는 이번 구조조정이 지난해보다 훨씬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SK컴즈는 누적 다운로드 횟수 4000만을 기록한 포토샵 애플리케이션 '싸이메라'도 분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싸이메라는 미국을 중심으로 동남아, 남미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수익을 내려면 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트 검색 서비스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에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SK컴즈와 다음은 검색 엔진 관련 업무 제휴를 진행하기로 하고 마지막 조율 작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이 체결되면 네이트 검색은 외관만 남긴 채 실질적 서비스 운용은 다음이 총괄하게 된다.

SK컴즈는 2002년 네이트닷컴을 시작으로 굵직굵직한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한 인터넷 기업이다. 2002년 라이코스코리아를 인수했으며, 2003년 싸이월드를 사들임으로써 도약의 길을 마련한다.

이후에도 SK컴즈의 공격적 행보는 계속됐다. 2005년엔 온라인 교육업체 '이투스', 2006년엔 전문 블로그 사이트 '이글루스', 2007년엔 인터넷 검색 업체 '엠파스'까지 인수했다. 당시 각 분야에서 나름 잘나갔던 인터넷 업체들을 차례로 흡수해 덩치를 키웠다. 엠파스 인수에 앞서 2006년엔 엠파스 검색기술 개발 전문업체 '코난테크놀로지'에 투자하면서 본격적인 검색 경쟁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잘나갔던 SK컴즈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표면적 이유는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모바일 SNS가 각광받는 동안 SK컴즈 핵심 서비스인 싸이월드는 대응이 늦었다는 평가다. 그동안 인수했던 업체들도 제 몫을 하지 못했다. 교육 사업에 난항을 겪던 SK컴즈는 2009년 청솔학원에 이투스를 매각했으며, 지난해엔 이글루스까지 팔았다.

전문가들은 SK컴즈가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우선 모회사인 SK텔레콤(SKT) 영향이 컸다. 국내 1위 이동통신사의 자회사란 점은 SK컴즈 입장에선 악재로 작용했다. 2009년 말 아이폰3GS가 국내에 처음 출시됐을 때 SK컴즈는 아이폰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SKT가 처음엔 아이폰을 유통하지 않았기 때문. 다른 SNS들은 아이폰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지속적으로 투자했지만 SK컴즈는 관망했다. 당시 SK컴즈는 카카오톡보다 더 파급력이 컸던 메신저 '네이트온'을 보유했지만 모바일 서비스로 확대하지 않았다. 모회사인 SKT 문자메시지 매출이 떨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아이폰 이후, 다른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SKT가 스마트폰을 유통할 때에도 SK컴즈는 SKT 입장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SKT나 SK플래닛에서 내려온 SK컴즈의 CEO가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훈 KB투자증권 연구원은 "SKT나 SK컴즈 사이 모바일 서비스가 이원화돼서 운영됐던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 둘로 양분되면서 SK컴즈는 독자적으로 모바일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경쟁사 대비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SK컴즈는 SK그룹 내 인터넷 콘텐츠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로 분류됐다. 2011년 10월 SKT가 인터넷 콘텐츠 사업 육성을 위해 SK플래닛을 분할하면서 SK컴즈 최대주주는 SKT에서 SK플래닛으로 바뀐다. SK플래닛은 SKT가, SK컴즈는 SK플래닛이 소유하는 구조다. 당시만 해도 SK컴즈의 싸이월드는 막대한 회원 정보와 트래픽을 바탕으로 SK플래닛 대표 서비스인 11번가와 T스토어, T맵 등과 플랫폼을 통합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2011년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SK컴즈는 내외부로부터 신뢰를 잃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SKT는 SK컴즈의 포털 경쟁 업체인 네이버, 다음과 차례로 손잡고 상품·서비스 강화와 차세대 먹거리 발굴을 위한 포괄적 제휴를 체결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SKT가 손자회사인 SK컴즈에 대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손을 놓은 것이라 평가한다.

내부 직원들은 벤처 특유의 문화가 사라졌다는 점도 SK컴즈가 침체의 길을 걷게 된 또 다른 원인이라고 꼽는다. SK컴즈 경영진이 SK 출신 낙하산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조직 문화가 다소 경직되고 회사 분위기 또한 딱딱해져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어려워졌다.

SK컴즈 내부 또 다른 직원은 "인터넷 사업을 전혀 모르는 SKT, SK플래닛 인사들이 경영진으로 오면서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시대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드림캠페인' 같은 행사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였지만, 성과가 부풀려져 보고되곤 했다"고 귀띔했다.

싸이월드와 싸이메라가 분사되면 거의 껍데기만 남는 SK컴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SK컴즈 측은 뉴스·쇼핑·게시판(네이트 판) 등의 서비스를 통해 종합정보를 제공하는 포털 기능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지만, 시장의 시선은 싸늘하다. 워낙 경쟁 업체들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SK플래닛은 2년 안에 자회사 SK컴즈 주식을 100% 사들이거나, 지분 전량을 매각해야 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단순히 SK플래닛이 SK컴즈를 100% 인수하느냐, 순차적으로 다른 업체에 매각하느냐, 이 두 가능성만 비교하면 매각 가능성이 훨씬 크다. 문제는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매각이 여의치 않으면 최악의 경우, 지난해 KTH의 파란처럼 관련 서비스 제공이 모두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저 경우 모두 장밋빛은 아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 사진 : 윤관식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36호(13.12.11~12.17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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