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방사능 공포 경제학]일본산? 무조건 No 한국산? Oh Yes~

2013. 10. 7. 09: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3년. 하지만 최근 원전 오염수 유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수산물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고 사고 당시 반짝 팔렸던 방사능 측정기 판매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는 방사능 테마주가 들썩이는가 하면 일본을 피해 한국으로 오겠다는 외국인 관광객 덕분에 국내 관광 업계에 화색이 돌기도 한다. 국내 소비자들이 원산지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원산지 추적 마케팅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런 트렌드를 통틀어 지칭하는 '방사능 공포 경제학'이란 용어까지 나왔다. 일본 방사능 우려로 희비가 엇갈리는 다양한 단면들을 들여다본다.

삐빅.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A씨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산 방사능 측정기를 장 볼 때마다 들고 다닌다. A씨는 "일본 방사능 문제가 계속 언론에 나오자 불안해서 들고 다니게 됐다. 특히 수산물 코너를 둘러볼 때마다 직접 측정해보고 나서야 사곤 한다"고 말했다. 방사능 측정기 판매업체인 테크피아의 유경철 대리는 "개당 단가가 100만~150만원가량 하다 보니 수년 전부터 판매를 했지만 공공기관이나 대형 할인점에서 간헐적으로 사가는 수준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월까지 2배나 팔려나갔다. 손님 안심시키기용으로 횟집 주인, 수산시장 상인 등이 주로 사가고 있는데 최근에는 일반 주부들 수요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 G마켓, 옥션에서도 방사능 측정기는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올해 초부터 꾸준히 수요가 늘어나면서 G마켓의 경우 올해 들어 9월까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했다. 옥션에서도 7월 전에는 거의 판매가 이뤄지지 않다가 9월에는 전월(8월 동기) 대비 300% 이상 늘었다.

일본 방사능 공포가 자아낸 사회상이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일본 원전 사고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으며 국내로 유입되는 일본산 제품들은 통관 절차를 강화,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이 보유하고 있던 오염수 300t이 바다로 방출됐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G마켓 관계자는 "관련 기사가 나오면서 방사능 측정기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방사능 측정기만이 아니다. 국내 식음료 업체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에 반색이다.

엔화 급락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수출을 늘리는 업체들 중 상당수는 식음료 관련 업체다. KOTRA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한국 맥주의 일본 수출은 금액으로는 23%(전년 동기 대비), 수량 기준으로는 43%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면 조개류 수출은 1억676만달러로 전년 대비 302%, 어란류는 344만달러로 전년 대비 1015% 급증했다.

신태철 KOTRA 선진시장팀 차장은 "원전 사고 여파로 일본 내에서 수산물, 식음료 안전을 우려하고 있어 수출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서 한국산 제품 반사이익

일본과 경쟁하지만 열세에 놓여 있던 중국과 홍콩 시장에서도 선전하는 분위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농수산식품의 대중국 수출액은 약 13억달러로 2007년 4억5000만달러에 비해 5년 만에 약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급 식품 소비가 많은 홍콩은 한국 농식품 수요 증가세가 더욱 뚜렷하다. 올 초부터 8월까지 수출량만 전년 동기 대비 26% 늘어 한국의 전 세계 농식품 수출 국가 중 수출 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일본산은 방사능 때문에 불안한 대신 한국산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예전엔 일본산만 고집하며 고자세를 보이던 홍콩 바이어들이 일부러 한국산을 찾는 경우도 있다. 가격도 예전엔 저가 이미지였는데 최근엔 고가로 돌아섰다.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한 한국산을 사먹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방사능 우려를 앞세운 마케팅 트렌드도 생겼다. 제품 원산지를 강조하는 이른바 '원산지 마케팅'이다. 각 업체들이 제품 라벨에 예전에 비해 원산지 표시를 두드러지게 크게 표시해 일본산과 관계없음을 은근히 강조하는 게 기본. 여기에 더해 QR코드나 일련번호 등을 삽입, 스마트폰 앱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게끔 유도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앱을 이용하면 생산자 이름, 농장 주소, 전화번호, 잔류농약 유무 확인도 가능하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경영학회장)는 "소비자들에게 좀 더 공신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원산지를 부각하는 건데 이럴 경우 재래시장, 중소기업 제품보다 대형 유통매장, 브랜드 제품 쪽으로 선호도가 높아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풀이했다.

반사이익은 호텔관광 업계도 웃게 만들었다. 일본과 한국을 두고 저울질하던 관광객들이 방사능 우려로 한국행을 결정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플라자호텔의 경우 외국인, 특히 중국인 투숙객이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160% 늘었다. 전통적으로 일본 고객이 많은 롯데호텔서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평균 7% 미만이었던 중국인 투숙객이 올해 들어 꾸준히 증가해 9월에는 20%대를 돌파했다.

정대호 롯데호텔서울 객실판촉팀장은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불안해진 2012년 9월부터 급격히 줄어든 일본인 투숙객의 빈자리를 방사능을 피해 한국으로 발길을 돌린 중국인 관광객이 채워줘 오히려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일본이 주변국들로부터 여행지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걸 방증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일본 원전 사태로 없던 수요가 생긴 경우도 있다. 한전원자력연료는 원전 사고 직후 방사능 오염토양 제거장비 수요가 늘 것이라 판단, 2년 만에 개발을 완료해 일본 수출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국내 업체의 벙커B유(중유) 수출이 지난해 전년 대비 580% 증가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신태철 KOTRA 차장은 "일본 내 원전 불신으로 대체 발전기 수요가 늘어나면서 에너지 원료 수출이 덩달아 늘어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증권가도 들썩인다. 특히 2011년 당시 형성됐던 방사능 테마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방사능 측정기 제작업체는 물론 축산 관련 회사들의 주가도 일제히 뛰었다. 수산물 대신 육류 소비가 늘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방사능 피폭 예방제를 내놨다는 제약회사들의 등락도 예사롭지 않다.

반면 일본 방사능과 직접 관계가 없다는 국내 수산업은 꽃게, 대하, 전어 등 제철 해산물을 제외하면 소비 위축으로 침통한 분위기다. 가파르게 수입량이 늘었던 일본산 맥주, 분유, 기저귀 등을 수입하는 업체들도 최근에는 국내 수요 침체로 위기감이 여느 때보다 높다. 서울 시내 일식집 주인 A씨는 "아무리 원산지를 밝히고 안전하다는 서류를 들이댄다 해도 발길 자체를 돌리는 경우가 많아 매출이 급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채운 교수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창궐하던 시절 BBQ가 치킨을 먹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해 보상액으로 10억원을 내거는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사례에서 보듯, 수세에 몰린 업체들의 경우 안전성을 부각시키는 식의 마케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상술을 부리다 철퇴를 맞는 일도 있다. 영세 건강기능식품 업체들이 '방사능 피폭 해독에 효과가 있다'는 식의 광고를 내보내다 당국에 적발당한 것. 홍삼 제품을 판매하는 A사는 '홍삼이 방사능 해독에 좋다'고 했다 검찰 고발을 당했고, 모 제약사는 비타민 제품을 '방사능 노출 시 지속 복용하면 피해를 예방한다'고 했다가 관할 구청에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광고했다고 제재를 받았다. 다시마젤리와 부각, 미역 제품을 파는 B사는 "방사성 요오드가 추후에 유입돼도 이들 제품들이 소변으로 배출해준다"고 했다가 관할 당국에 시정 명령을 받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도 방사능 피폭 해독제를 개발했다거나 예방물질로 알려진 요오드화칼륨 관련 매출이 전혀 없는 테마주가 이상 급등해 금융당국이 투자주의보를 내는 사례도 있다.

김갑호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부 업체의 경우 보도 자료나 공시 자료에 슬쩍 방사능이란 단어를 넣기도 한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종목의 경우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 : 박수호·문희철 기자 / 일러스트 : 김민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26호(13.10.02~10.0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