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活路를 열자] [1] '하우스 푸어' 32만 가구.. 빚 26조원 상환 부담에 지갑 열 여유 없어

홍원상 기자 2013. 9.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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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침체 악순환 부르는 '하우스 푸어'] 원리금이 소득의 60% 넘는 파산 일보 직전의 가구는 7만 원금 상환 유예·금리 인하하고 稅부담 줄여 거래 활성화해야

"이 아파트만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요. 명의만 내 집이지 들어가 살 수도 없고 처분도 못하고…."

인테리어업을 하는 허모(46)씨는 2009년 사들인 경기 파주의 아파트(전용 108㎡)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갖고 있던 돈을 탈탈 털어 4억3000만원에 산 집이다. 허씨는 은행에서 빌린 돈 2억원, 이 아파트를 전세 주고 받은 보증금 1억8000만원, 기존에 살던 집 전세 보증금을 더해 이 아파트를 샀다. 그러고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다.

지금 이 아파트는 애물단지다. 집값은 살 때보다 8000만원 떨어졌고, 매월 나가는 대출 이자로 생활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월수입 400만원 중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원금·이자로 115만원이 바로 빠져나간다. 남은 돈으로 네 식구가 사는데, 매월 55만원 적자 인생이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학원도 줄이고, 경조사비도 확 줄였지만 역부족이다. "지금 아파트를 팔아도 대출금·보증금을 갚기는커녕 빚만 남네요. 한 번의 실수로 4년 넘게 은행 이자만 갚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좀 나아졌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집 사는 데 빌린 돈 갚느라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 문제는 여전하다. 일부 하우스 푸어는 손실을 보고서라도 집을 팔려 하지만, 주택 거래가 꽁꽁 얼어붙어 처분도 못하고 대출금 상환 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집 살 때 빌린 돈 갚느라 가계 소비를 극도로 줄여야 하는 실질적인 '빈곤' 상태에 빠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통 매년 갚아야 할 대출 원금·이자 총액이 연소득의 30%를 넘는 가구를 하우스 푸어로 잡는다. 명지대 김준형 교수(부동산학) 조사 결과 이런 가구가 국내에만 32만8169가구에 달하고, 이들의 부채액은 26조3286억원에 이른다. 32만 가구는 분당신도시 전체 가구(9만 가구)의 3배 이상이고, 부채 26조원은 우리나라 1년 예산(300조원)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갚는 돈이 연소득의 60%가 넘는 파산 일보 직전의 하우스 푸어도 7만1769가구(부채액 5조5716억원)에 달한다.

하우스 푸어는 세계경제 위기와 30~40대 주택 수요층의 구매력 감소와 맞물리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집을 싸게 팔아 금융 부담을 줄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선임연구원은 "국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정부 정책도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이 사실상 없는 '은퇴 후 하우스 푸어'는 더 심각하다. 공기업에 다니던 정모(66)씨는 2005년 은퇴하면서 서울 잠실에 있던 집을 팔고 경기 용인의 아파트를 4억3000만원에 샀다. 이때까지만 해도 용인 지역 아파트 값이 오르고 있어 노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7년 결혼한 막내아들 전셋집을 마련해주려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2억원을 빌리면서 문제가 꼬였다. 요즘 정씨의 유일한 수입인 국민연금은 나오자마자 은행 이자로 사라져 버린다. 아파트 값은 2억8000만원까지 떨어졌고, 통장에 남은 여윳돈도 7000만원밖에 없다. 정씨는 "이제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하우스 푸어는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의 노후 문제와 직결돼 있다. 또 국가 전체로는 침체된 내수 경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국대 손재영 교수(부동산학)는 "하우스 푸어가 손실을 보더라도 집을 팔 수 있도록 취득세 영구 인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 폐지를 통해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거복지연대 장성수 전문위원은 "먼저 대출금의 원금 상환 유예와 금리 인하를 통해 파산 위기에 놓인 가계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며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풀어 투자 심리를 살리면서 가계대출 총량을 줄여가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

소득에 비해 과도한 빚을 내 집을 사는 바람에 대출 원리금 상환과 세금 부담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을 말한다. 최근에는 주택 가격 하락으로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다 갚지도 못하는 '깡통 주택' 소유자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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