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GDP 6년前으로 퇴보.. 驛이름·금니도 내다 판다
지난 27일(현지 시각) 오전 10시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중심인 솔 광장(Puerta del Sol). 50여명이 넘는 이들이 'Oro'라는 글귀가 인쇄된 형광 조끼를 입고 행인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Oro'는 금(金)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금매입상들이 현금이 필요한 이들로부터 금을 사들이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고 있던 것이다.
금매입상들의 호객행위는 이제 스페인의 익숙한 거리 풍경이 됐다. 2년 전부터 솔 광장에서 금매입상으로 일하고 있는 알론소(44)씨는 "3~4년 전부터 금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며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금반지, 금목걸이뿐 아니라 금니도 갖고 온다"고 말했다.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5년이 흘렀지만, 유럽의 4대 경제대국 스페인은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다. 5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부동산 버블이 터지고, 집값이 폭락하고 은행과 건설업체들이 부실화되면서 실업자가 쏟아졌다.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으로부터 1000억유로를 긴급 수혈받아 은행의 연쇄 부도는 막았지만 실물경제는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2011년(0.4%)을 제외하고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1인당 GDP도 2007년 2만8330달러에서 지난해 2만6577달러로 뒷걸음질쳤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1.7%로 예상된다. 정부는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마드리드 시민들은 정부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프라도 미술관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스라엘 프리에토(33)씨는 "마드리드에서 불황을 느끼지 않는 데는 레알 마드리드(축구팀)뿐"이라며 "노인들은 현재 상황이 70여년 전인 스페인 내전 때보다 더 안 좋다고 말한다"고 했다.
암울한 것은 정부가 상황을 개선시킬 능력을 소진해 버렸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을 대거 투입하면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8년 47.8%에서 올해 97.8%로 급등했다. 재정 건전성 회복이 급선무인 상황이라, 경제 회복을 위해 정부가 추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상태다.
돈줄 마른 지방자치단체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내다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서울역에 비유할 수 있는 마드리드 솔 광장역은 최근 이름이 '보다폰-솔역'으로 바뀌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마드리드시가 3년 동안 영국의 통신사인 보다폰으로부터 300만유로(약 44억7000만원)를 받고 역과 지하철 노선 이름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드리드 지하철 2호선은 '보다폰 2호선'으로 불리게 됐다.
일자리가 없다 보니 스페인 청년들은 2명 중 1명이 실업자다.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만난 다니엘 모랄레스(26)씨는 3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지금까지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모랄레스씨는 "취업을 하는 데 대학 간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다음 달 독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호텔 직원인 카탈리나 고메즈(26)씨는 "경제 상황이 계속해서 안 좋다 보니 요새는 '거지도 스페인을 떠난다'는 말까지 한다"고 말했다.
불황의 골이 깊다 보니 스페인을 상징하는 투우 산업도 고사(枯死) 직전에 놓여 있다. 17세 때부터 투우사로 일한 이반 다니엘(32)씨는 매일 아침 투우 경기장 대신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중심인 마요르 광장(Plaza Mayor)으로 출근한다. 화려한 투우사 복장을 하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대가로 1유로씩 받는다. 다니엘씨는 "10년 넘게 투우사로 일했지만, 작년부터 투우 경기가 없어 광장에 나와 돈을 벌고 있다"며 "운이 좋으면 하루에 30유로(한화 약 4만5000원) 정도 번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대학 빈센트 로옐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매년 3000경기 이상 열리던 투우 경기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침체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1997경기만이 열렸다. 스페인 언론들은 일자리를 잃은 스페인 투우사들이 남미에서 투우 경기가 가장 활발한 페루로 떠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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