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갈수록 대담해지는 욕망의 상상화, 조감도

2013. 8. 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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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부감과 투시와 원근과 명암을 골고루 사용한 마천루,

지상의 모든 풍경을 손아귀에 틀어쥔 듯한 신기루.

이제 사람들은 안다, 저 아득한 조감도가 허상임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대지를 달궜던 해는 어느덧 서녘으로 물러가는데, 그 마지막 모습이 오히려 장관이어라. 조셉 콘래드가 < 암흑의 핵심 > 도입부에서 묘사한 템즈강 하류처럼 '세상의 가장 먼 끝까지 이어지는 뱃길의 고요한 위엄을' 보이는 바다 속으로 해는 빨려 들어가고, 저녁놀이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어디가 바다이며 또한 어디가 하늘인가. '바다와 하늘이 이음매 없이 맞붙어 있는' 황홀경 아래로 '평평하게 뻗어나가다 바다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저지대의 강기슭에는 옅은 안개'마저 깔려 있다.

그렇게 장려한 황홀경을 배경으로 하여 거대한 도시가 펼쳐진다. 한복판에는 오직 그것만을 위하여 독특한 부감과 투시와 원근과 명암을 골고루 사용한 마천루가 보인다. 21세기의 마천루는 철근이나 콘크리트로부터 자유로운 듯 보인다. 외경 세계를 빨아들일 듯한 유리 건물들은 찬란하게 비상한다. 주변으로 낮은 건물들이 보인다. 그것들은 인격이 없다. 무성체다. 하나의 배경일 뿐이다. 오직 중앙에 기립하여 세상을 압도하고 있는 마천루의 높이를 강조하기 위해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엎드려 있다. 낮은 곳으로는 숲이 있다.

사업비가 317조원으로 예상되던 인천 에잇시티의 조감도 모습. 8월 1일 인천시는 사업 무산을 발표했다.

숲이 있으니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으니 사람들이 있다. 몇몇은 걸어다니고 몇몇은 벤치에 앉아 있다. 안전하고 안락해 보인다. 그 바깥으로 도로가 뻗어 있는데, 직선의 도로지만 중앙의 마천루를 피하여 일부러 우회한다. 차량은 그리 많지 않다. 쾌적한 속도가 연상된다.

조감도(鳥瞰圖).

그렇다. 새의 관점에서 지상을 내려다 본 그림이다. 이 산하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다. 강남구 논현동 경복아파트 리모델링 공사 현장에서, 일산동구 백석동 59층 와이시티 분양 현장에서,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 재개발 현장에서, 해운대 앞바다 코스모시티 개발 전단지에서, 서해의 청라 송도 국제도시에서, 거의 파산 지경인 인천 서구 루윈시티 철거 현장에서 언제든지 조감도를 볼 수 있다.

개발공화국 산하를 뒤덮은 황홀경

한때 우리는 개발도상국이었으므로 그 시절에 조감도는 산하를 뒤덮었다. 21세기 들어서도 이 나라의 수도는 '뉴타운 공화국'이 되어 눈만 돌리면 천지가 개벽한다는 조감도가 나부꼈고, 4대강 사업에 국제도시 건설, 2014아시안게임에 2018평창올림픽, 관청 이전에 신청사 건립 따위가 나날이 지속되어 조감도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제주도 청정지역도 관광레저타운 건설이요, 강원도 오지도 힐링센터 건설이니 그 공사장 입구에 척 갖다 붙여놓은 것도 역시 조감도다.

조감도는 현대적 도시 개발의 상징이지만 그 이전의 인류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꼽히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보자. 왕족들이 사냥하러 나갔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비바람을 피할 용도로 쓰이던 파리 외곽의 작은 거처를 루이 14세가 의욕적으로 개발하여 1682년에 신도시 궁전으로 삼아 사실상의 천도를 했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즉 1789년 프랑스 혁명에 따라 강제로 왕의 거처가 파리로 옮겨질 때까지 베르사유는 절대주의 왕권의 상징이었다. 이 시기의 화가 피에르 파텔은 단순한 도시 풍경을 담은 조감도가 아니라 교황 세력과 귀족 세력을 눌러버린 절대주의 왕권의 바벨탑을 거대한 조감도풍의 그림으로 남겨놓았다.

인천 송도 신도시 앞에 세워진 조감도의 모습.

중세 이후 이미 조감도는 회화에서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였다. 멀리 있는 것은 높이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은 낮게 그림으로써 지상의 모든 풍경을 손아귀에 틀어쥔 듯한 이 방식은 곧 유럽인의 세계관이기도 했다. 저 멀리 대서양을 건너고자 하는 상인과 항해사들, 그리고 '30년 전쟁'을 위시한 수많은 영토 확보 및 국경 확정 전쟁 때의 군사용으로 조감도는 널리 사용되었다. 근대 이후에는 나폴레옹 3세의 파리 정비나 19세기 후반 시카고의 건설 등에서 보듯이 근대적 도시 개발을 시각적으로 웅변하는 장치로 굳어졌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방식이 응결된다. 서양 근대회화의 방법론적 기초가 된 소실점은 조감도의 핵심적인 장치다. 경관 속의 주요 구조물 사이의 거리와 깊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방식은 오늘날의 조감도에서 도로, 가로수, 숲, 가까운 곳의 거대한 빌딩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 배경 등에 복합적으로 쓰인다. 이 기초 위에 대기 원근법이 작동한다. 공기의 밀도에 의하여 빛이 투과할 때 미묘한 변화가 발생한다. 공기 중의 수증기나 먼지 같은 작은 입자들이 빛을 산란시킨다. 빛의 짧은 파장 영역이 가장 많이 산란되어 멀리 있는 풍경은 푸른 빛을 띠면서 부드럽게 흐려진다. 오늘날의 조감도가 흐릿하게 펼쳐져 있는 광막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물리적 이치다.

'본 이미지는 실제공사와 무관합니다'

조감도는, 욕망의 상상화다. 그러나 누군가가 막연히 그린 욕망의 투시도가 아니라 상당한 비용과 에너지가 투입되는 집합적 열정의 세계다. 그래서 마찰도 많다. 분양 때 참고 삼아 본 조감도와 건설된 후의 실제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숲을 근사한 배경으로 그려넣거나 들어서지도 않을 학교나 문화공간을 그럴 듯하게 묘사했다가 부당광고로 판명돼 시정조치를 받은 사례도 많다.

이제는 조감도를 믿지 않는다. 구석에 조그맣게 쓰여진 글귀, 즉 '본 이미지는 실제 공사와 무관합니다' 같은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감도는 더욱 더 대범해진다. 절대왕권 시대의 군주가 꿈꿨던 도시를 맘껏 그려넣는다. 오가는 사람들은 신기루를 바라본다. 저 아득한 조감도가 실제 공사와 무관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욕망을 더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투사한다.

그러는 사이에 찬란한 조감도로 제시되었던 거대한 개발계획들은 하나둘씩 좌초된다. 보라. 저 인천의 용유도·무의도 일대에 지어진다던 복합 관광레저 도시 '에잇 시티'의 조감도를! 사업비가 무려 317조원에 달하는, 마카오의 3배 규모로 테마파크, 카지노, 위락레저, 초호화 컨벤션센터와 호텔 등을 짓는다던 저 조감도! 그러나 최근 에잇시티 건설사업은 무산됐다. 인천시와 에잇시티가 2007년에 맺은 기본 협약은 해지되었다. 조감도만이 남았다. 흡사 22세기의 신도시 같은 풍경 한복판에 큼직하게 발기된 거대한 남근 같은 튜브 건물의 조감도! 저 거세된 욕망의 지쳐버린 소실점을!

정윤수 <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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