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폭탄 남기고..사라진 '용산 신기루'

2013. 3.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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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31조짜리 '과시성 개발' 파국

시행사, 이자 52억 결국 못내

법정관리 가거나 파산 절차

'초고층 빌딩숲' 개발 과욕

오세훈 전 시장이 규모 키워

31조원 규모의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7년 만에 파산으로 가는 막다른 길목에 들어섰다. 시세차익을 노린 30개 출자사들이 거액의 투자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개발구역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개발이익을 노린 '부나방' 같은 민간업체들과 과시성 개발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과욕이 불러일으킨 재앙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3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자산관리위탁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은 이날 오전까지 갚기로 한 금융이자 52억원을 내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문제의 52억원은 전날 만기에 이른 2000억원 규모의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이자다. 이번 채무불이행에 따라 모두 8차례에 걸쳐 발행한 총 2조70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 전액이 부도 처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용산 개발을 총괄하는 시행사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용산역세권개발의 모회사 격)는 다음달 초까지 회생 가능성을 따져본 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거나 청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2006년 첫걸음을 뗐다. 2005년 공기업으로 출범한 코레일은 경부고속철도 건설비용으로 쌓인 국가채무 4조5000억원을 떠맡았다. 지금은 흑자를 내고 있는 고속철도 사업 또한 도입 초기엔 실적 부진을 보였다. 코레일이 매해 수천억원씩 쌓이는 적자 매출을 감당할 여력이 없자, 정부는 철도 경영 정상화 대책을 내놨다. 코레일이 서울의 '금싸라기'인 용산 지역에 보유하고 있던 차량기지에 주목한 대책이었다.

코레일의 첫번째 실책은 차량기지의 부지를 매각해 부채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사업에 참여한 것이었다. 코레일은 2006년 삼성물산 컨소시엄에 부지를 매각하는 한편, 지분 29.9%를 투자해 개발사업에 발을 담갔다. 코레일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후회하지만, 당시로서는 투자 수익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코레일의 이런 결정을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공공 운송수단으로 적자를 감당하기 마련인 세계의 철도 공기업들은 넓은 철도 주변 땅을 개발해 그 차익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곤 한다. '철도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의 일본철도그룹(JR그룹) 역시 호텔, 민자역사 개발 등 부동산업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결정적으로 꼬이기 시작한 변곡점은 2007년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와 연계된 것이었다. 서울시는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포함시켰다. 코레일은 애초 용산차량기지 부지만 개발할 것을 제안했지만, 개발사업에 대한 인허가권은 서울시가 쥐고 있었다. 결국 서울시는 용산구 서부이촌동 일대를 사업 권역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2007년 8월 코레일과 합의문을 작성했다. 부동산 경기는 활황이었고, 두바이에 지어진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부르즈 두바이)로 대표되는 도시개발 신화는 건설업계와 정치권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는 3조원의 보상비를 추가로 감당해야 했다. 또 2200여가구 정도 되는 서부이촌동 주민들과의 이견 조율 탓에 착공 시기는 점점 늦춰졌다. 이에 따르는 금융비용만 1조원에 달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도시공학)는 "용산 개발사업 실패의 책임자는 누가 뭐래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코레일의 애초 계획대로 철도기지만 개발했다면 이미 빌딩이 다 들어섰을 것"이라며 "이런 대규모 공사를 단계를 거치지 않고 한번에 추진하고, 거기에 민간 보상 문제 등 난제를 짊어지웠으니, 전세계 어떤 개발업체가 들어왔더라도 파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사이 부동산 거품은 꺼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며 건설업체의 기초체력을 잠식했고, 늘어나는 금융비용, 지지부진한 보상 문제에 사업성은 떨어졌다. 오피스빌딩 위주(업무시설+상업시설)인 사업계획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경기 둔화로 서울지역에 들어선 상업시설의 공실률이 높아지기 시작해 2008년 당시 1% 남짓에서 이제 6%를 넘나든다. 개발이익을 노린 건설자본들은 서서히 손을 떼기 시작했다. 결국 개발사업의 한 축이었던 삼성물산은 2010년 용산역세권개발㈜의 지분을 포기하고, 사업 주관사 지위를 내놓았다. 지분을 넘겨받은 롯데관광개발은 우리금융지주 회장 출신인 박해춘 현 회장을 영입해 사업을 재가동하려 했지만, 동력을 잃은 개발사업에 산소호흡기를 붙인 꼴이었다. 불과 52억원을 막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들어섰지만, 최근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에 자본금을 지원하기 위한 2500억원 전환사채 발행에 참여한 업체는 30개 출자사 가운데 단 한곳도 없었다.

건축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서울의 정중앙에 자리잡은 중요한 지역이자, 오랜 역사성을 지닌 땅을 하루아침에 초고층 빌딩 숲으로 만들어 개발이익을 챙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도시와 건축에 대한 철학의 부재라는 것이다. 또 용산에 들어설 건물들의 설계를 명품 브랜드 구입하듯 모두 해외의 스타 건축가들에게 몰아준 점도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해외 건축가들이 내놓은 건축 디자인은 서울과 용산의 특성, 그리고 지역의 문화적 의미에 대한 이해 없이 겉모양만 화려하다는 것이 건축계의 중론이었다.

중진 건축가인 김인철 전 중앙대 교수는 "용산 개발은 도시와 건축을 본질적으로 잘못 다룬 대표적 유형"이라며 "있지도 않은 휘황찬란한 조감도 하나로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발상, 그리고 건축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방식 모두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노현웅 최종훈 구본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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