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후보의 변신', 유죄인가 무죄인가?

입력 2012. 12. 7. 15:23 수정 2012. 12. 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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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행수 기자]

"작금의 교육 황폐화와 정신적 공황상태를 책임져야 할 인사들이 오히려 솔선해서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교육 지도층으로부터 교육정상화를 기대하기는 무리이다…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을 즉각 인사조치하라." - 2000.5.27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

언뜻 보면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의 이주호 장관 퇴진을 촉구하며 발표한 성명서 같지만 이 대변인 성명서의 주인공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퇴진을 요구하는 대상은 2000년 5월 당시 문용린 교육부 장관이다.

문용린 전 장관은 최근 새누리당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서울교육감 선거에 보수 진영 단일후보로 나서게 되었는데 사실상(현행 공직선거법 상 정당은 교육감 선거에 지지선언이나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금지 되어 있음) 새누리당 지지 후보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이 문용린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한나라당의 퇴진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난 문용린 장관은 어떻게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의 행복추진위원회 핵심으로 활동하게 되었을까? 2000년 광주 NHK 룸가라오케 사건에서부터 2012년 12월까지의 문용린 후보와 새누리당의 밀당 관계를 되짚어 보자.

'5·18 술자리 파문', 술자리 참석에서 불명예 퇴진까지

"교육부 장관으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물의를 야기한 데 대해 깊이 뉘우치고 있다. 광주항쟁 20주년 전야제가 끝난 뒤 숙소로 가던 중 주점에 들러 1시간 정도 음주를 가진 바 있다. 이러한 처신은 5·18 정신을 훼손하는 사려깊지 못한 행위로 교육부 장관으로서 양식있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5·18 민주영령, 광주시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 2000.5.27 대국민 사과문 발표

문용린 장관은 2000년 5월 27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망신을 당한다. '5·18 전야제 술자리 파문' 또는 'NHK 룸살롱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을 당시 언론보도 등을 통해 재구성해 보자.

5·18은 DJ정부를 탄생시킨 모태로 DJ정부에게는 어떤 기념일보다 의미있는 날이고, 또 이 때 희생된 광주 시민들에게 부채의식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시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대거 5·18 기념식과 학술대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로 향했다.

애초 먼저 보도된 것은 386 정치인들의 술자리였다. 계속되는 언론의 질타로 386 정치인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었다. 애초 민주당 386 정치인들의 술자리로만 알려졌는데 사실은 먼저 온 문용린 당시 교육부장관 등이 같은 자리에서 술자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문용린 교육부장관은 5월 17일 오후 전남대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한 후, 저녁 5·18전야제 행사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행사 도중 자리를 떠서 문제의 룸살롱으로 옮겨서 술자리를 가진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술자리에는 문용린 장관과 전남대 총장 등 교육계 인사 6명이 참석하였으며, 이들은 접대여성 2명의 술시중을 받으며 양주와 맥주를 마셨다. 노래방기기를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등 여흥을 즐기다 386 정치인들이 들어오자 서둘러 자리를 떴다.

문용린 장관 등 교육계 인사들이 5·18 전야제 중간에 접대여성이 나오는 술자리를 가진 것뿐아니라, 386 정치인들이 뭇매를 맞고 있을 때 침묵했다는 것, 그리고 이 술자리의 유흥비를 전남대에서 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덕성 시비까지 겹쳐 퇴진 요구가 제기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문용린 장관을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하필 그날 386세대 정치인들이 그 술집에 있었을까, 잘 아는 친구끼리 술 한잔 한 건데… 이게 알려지면 난 옷을 벗어야한다.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 - 2000.5.28 <

국민일보> 보도 문용린 장관 발언

이 사건과 관련하여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사건 보도를 무마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H일보는 기자의 취재 수첩을 통하여 문용린 장관이 취재하는 기자에게 사실이 알려지면 옷을 벗어야 한다면서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고, 책임 지고 물러나지 않는 문용린 장관을 비판했다.

5월 27일 문용린 장관은 언론의 집중포화와 대통령까지 나서서 직접 꾸지람을 하는 데에 못이겨 결국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각에서 요구한 사퇴를 거부했다.

"이번 '술판사건'은 5월 영령은 물론 5월단체와 광주시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준 사건이다. 당사자들(386 정치인과 문용린 교육부 장관 등)의 진정한 사과가 없을 경우 이들을 '5·18묘지 참배 거부 인사'로 규정하겠다. - 2000.6.1 5·18기념재단 김동원 이사장 기자간담회

문용린 장관의 대국민 사과문에도 불구하고 반발은 계속되었다. 그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5·18기념재단 김동원 이사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하여 5·18 전야제 때 광주에서 술판을 벌인 이들이 5월 영령 앞에 사과하지 않을 경우 이들의 5·18묘지 참배를 거부하겠다고 초강경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386정치인들에 대해 비난했고, 교육부

장관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인사조치, 사실상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당시 국회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의 반발은 김대중 정부에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당시 DJ정부는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하는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5·18 술자리 사건으로 국민적 인식이 악화일로를 치닫게 되지 부총리 승격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당시 유력한 초대 교육부총리 후보였던 문용린 장관의 거취까지 불안해져 버렸다.

결국 문용린 장관 본인은 계속 버티었지만 여론과 정치권의 반발에 부담을 느낀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8개월도 되지 않은 문용린 교육부 장관을 8월 전격 교체한다. 사실상의 경질, 즉 문용린 장관에게는 불명예 퇴진인 셈이다. 이로서 초대 교육부총리도 영영 물 건너 가버렸다.

문용린의 변신은 무죄? 새누리당 거쳐 보수 대표선수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문용린 장관이 한나라당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용린 장관 퇴진 요구 성명을 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문용린 후보를 전격 포용했다. 지난 9월 박근혜 대선 후보를 지원하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문용린 전 장관이 임명된 것이다.

대표적인 개혁 성향의 교육학자로 알려져, 최초의 민주정부 DJ정권의 교육부 장관을 거쳐 초대 교육부총리까지 물망에 올랐다가 5·18 술자리 파문에 이은 한나라당의 퇴진 공세에 불명예 낙마했던 그가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 품에 안긴 것이다.

그의 변신의 최고압권은 이전의 문용린과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보수 또는 극우 인사들에 의해 보수 단일후보로 서울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이런 변신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오죽하면 같은 보수 진영에서조차 전교조 교육감이라는 비판을 할 정도이다.

그가 한나라당 쪽으로 방향을 튼 시기는 사학법 개정을 전후한 것으로 보인다. DJ정부와 민주당,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공약이자 당론이었던 사학법이 2005년 개정되자 정원식, 이명현, 이상주 등 전 정권 장관들과 함께 개정 사학법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것이 문용린 후보와 한나라당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하는 계기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2012년 9월 한발 더 나아가 새누리당이 올해 대선에 맞춰 구성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박근혜의 남자'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정당원의 교육감 출마와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지방교육자치법 등에 위반된다는 법적 시비와 함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이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제기되었다. 이와 동시에 5·18 술자리에 대한 도덕적 논란이 다시 불거졌지만 문용린 후보측은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 관련) 자격 논란은 한마디로 정치 공작이다. 자신이 당선될 자신이 없으니 네거티브를 하는 것으로 문 전 장관은 출마에 아무런 법적인 하자가 없다. ('5·18 술자리 추문' 관련)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현재 모든 권력을 누리고 있다. 교육감이고 정치판이고 신(神)을 뽑는 것이 아닌데, 술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당시 함께 있던 사람들이 권력에 있을 땐 침묵하더니 문 전 장관에만 문제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2012년 11월 16일 <

민중의 소리> 인터뷰(문용린 측 관계자)

현행법 상 정당이 교육감 선거운동을 할 수 없어서 공개적인 지지선언을 한 적은 없지만 문용린 후보가 새누리당의 지지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별다른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이렇게 변신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초대 교육부총리 1순위에서 불명예퇴진의 계기가 된 술자리 파동 직전에 그가 참가한 5·18학술대회에서 한 기조연설 제목이 '21세기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교육'이다.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런 그가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를 극렬 반대하는 보수 단일 후보가 되었다는 것은 슬픈 코미디이다.

5·18 전야제 술자리 파문에서 새누리당을 거쳐 보수단일후보로 이르는 과정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시비는 선거가 끝나는 날까지 그를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문용린 후보의 변신은 무죄일까, 유죄일까? 2012년 12월 19일 서울시민의 선택에 의해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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