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호텔은 비정규직에겐 탄광의 막장"

2007. 6. 2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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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

▲ 27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서 '여성비정규직노동자 사직 및 용역전환 강요하는 롯데호텔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2007 오마이뉴스 선대식

"롯데라는 대기업을 믿었다. 힘들고 억울해도 참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16년 동안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던 롯데호텔 비정규직 노동자 오미영(가명·53)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롯데호텔 쪽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불러 "6월 30일까지 사직서 및 용역 전직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회사에서 '서명 안 하면 후회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밝혔다.

27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서 이 호텔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사정을 고발하기 위해 모였다. 오씨도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이 자리에서 "비정규직 다 죽이는 롯데호텔 규탄한다"고 외쳤다.

오씨는 "용역 전환은 너무 분통이 터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1991년 입사한 오씨는 주 40시간 일하고 82만원을 받았다. 이마저도 5년 전 임금 그대로였다. 오씨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건 하나도 못 누렸다"며 "그저 밥만 먹고 일만했다"고 밝혔다.

그뿐 아니었다. 오씨는 "팔이 너무 아파 근육이 튀어나올 정도로 일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그들에게 그렇게 일한 대가가 용역전환이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탄광의 막장"

이날 열린 '여성비정규직노동자 사직 및 용역전환 강요하는 롯데호텔 규탄 기자회견'은 노동자들과 롯데호텔 쪽 직원들의 마찰로 시작됐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비켜달라"고 요구했고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보장받은 집회"라고 맞받았다.

이복준 롯데호텔노동조합 위원장은 기자 회견문을 통해 "(우리가) 일하는 곳은 아름답고 정갈하게 보일지 모르나 실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탄광의 막장"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화려하게 포장된 특급호텔의 뒷모습은 상상키 어려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롯데호텔이 월 72~84만원 정도의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내쫓기 위해 갖은 회유와 협박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해남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역시 "쓰면 삼키고 달면 뱉는 롯데자본은 부당하고 부정의한 일을 시정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어 "이 문제는 근본은 비정규직 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은 "정부는 공공부문, 민간기업 몇 군데 정규직화한 것을 가지고 생색내고 있다"면서 "실제로는 기간제, 파견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상시적인 일을 똑같이 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채용해야한다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밝혔다.

차별 다음에는 계약해지

▲ 롯데호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선대식

용역 전환 대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참은 게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9년째 롯데호텔에 몸 담고 있는 민명홍(49)씨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했는데도 임금은 물론이고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말했다. 임금은 정규직의 1/3~1/4 수준이다.

민씨는 "중간 관리자들이 인사를 해도 안받고, 열심히 일해도 우리만 욕먹고, 이름조차 불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0년에 롯데호텔에서 해고된 이남경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은 "봉사 활동할 땐 가족이라고 해놓고선 1년에 두 번 나오는 야유회비 1만2천원도 안줬다"고 말했다.

이들을 힘들게 한 건 이러한 차별뿐이 아니었다. 계약해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2002년 12월 식기세척부분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15명이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길게는 십 수년째 일한 상황이었고 계약 만료일도 몇 달이나 남아있었다. 이들이 "부당해고"라고 문제제기하자 회사는 '신규입사'를 통해 복직시켜 주겠다고 했다.

이남경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은 "호텔 쪽은 향후 계약 해지 시 법적으로 반복근로 판정을 받지 못하도록 신규입사를 권유했고, 또한 근속년수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계약 해지로 해고를 당한 뒤 3개월 뒤 복직했던 유수영(46)씨는 이번이 두 번째다. "황당하다"는 게 그의 첫마디였다. 유씨는 "한 번 더 믿었던 내 자신한테 화가 났다"며 "회사에 대한 배신감을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또한 "억울하고 속상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고 덧붙였다.

"6월 30일까지 동의 않으면 해고 통보"

▲ 이복준 롯데호텔노동조합 위원장은 기자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선대식

이복준 위원장은 "비정규직 법을 앞두고 전국 롯데호텔의 800여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까지 해고와 용역전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롯데호텔은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다.

현재 롯데호텔은 "서울점과 월드(잠실)점의 식기세척부분을 아웃소싱(용역전환) 하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외부 용역은 90년대 말부터 전 호텔업계의 추세"라고 밝혔다.

현재 두 곳의 식기세척부분에는 44명의 비정규직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용재 롯데호텔 홍보실장은 "근무환경이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라며 "2년간의 고용보장과 기본급 3개월 치 위로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박했다"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서 이 홍보실장은 "들은 바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고용사정이 열악했다는 의견에는 "그 부분에 동의를 하고 들어온 만큼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홍보실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6월 30일까지 동의하지 않으면 해고 통보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보호' 법 시행을 앞두고 350여명의 뉴코아 비정규직 계산원이 계산대를 빼앗긴 데 이어 22일에는 해고통보를 받은 ㅅ여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실을 기도하기도 했다. 롯데호텔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비정규직 '보호' 법의 보호(?)를 받게 됐다.

김용원 전국 민간서비스산업 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은 "어떻게 힘들고 어려운 고생을 마다하고 일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 수 있느냐"고 소리쳤다. 이어 "비정규직 보호하라고 만든 법을 악용해서 이렇게 할 수 없다"며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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