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新고졸시대의 취업 전략

2012. 6. 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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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차 등 고졸 공채 눈에 띄게 증가

[이코노미세계]

모 지방대 컴퓨터공학과 2학년을 중퇴한 이익두군(25세)은 지난해 음향기기 렌탈 회사에 취업했다. 그가 하는 일은 소위 '3D업종'으로 막노동에 가깝지만 미래는 희망에 차 있다.

군 제대 직후만 해도 복학과 취업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가 대학 졸업장 대신 3D 업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군은 "대학을 졸업해도 지방대라서 취업문이 너무 좁다. 남은 학기 동안 등록금도 부담스럽고 하여 고졸 채용에 응했다"라고 입사 동기를 밝혔다.

규제 완화 놓고 전문가 견해 엇갈려

이군의 회사는 대학 축제나 기업 행사에 장비를 렌털해주고 음향을 세팅해주는 곳. 이군은 입사 2개월이 지날 즈음 눈이 번쩍 띄었다. 국내 음향 전문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다 수요는 많아 상당한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이군은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방송통신대 등에서 음향 이론과 실기를 익히는 길을 찾았다. 이군의 현재 연봉은 2000만원이 채 안되지만 10년 후에는 대졸자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보고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학벌 대신 취업 선택하는 실속파 늘어

요즘 청년 취업자들 중에는 이군과 비슷한 케이스가 적지 않다.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며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잘 되지 않는 현실 탓에 '학벌' 대신 '취업'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고졸 취업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한다. 선진국에 비해 유난히 '학력 콤플렉스'가 심한 한국 사회에 바야흐로 '취업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고졸 채용 바람은 금융권에서 먼저 불었다. 지난해 은행연합회는 3년간 2700명의 고졸 행원을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은 비정규직 고졸 행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목을 끌었다. 올해 들어와서는 정부가 나서 고졸 채용을 독력하고 있고 국내 주요 기업들도 인재 양성 차원에서 고졸 채용을 늘리는 추세다.

지난 5월 29일 열린 '2012 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 교육과학기술부와 고용노동부, 중소기업청이 후원한 이 행사 현장에는 최근 고졸 채용 확산 분위기를 반영하듯 전국 100여개 특성화고 재학생 3000여명이 몰려드는 등 참여 열기가 높았다.

현장에서 만난 마이스터고 재학생 A군은 "방금 중동 소재 해외기업과 화상면접을 마쳤다. 꼭 합격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학력 콤플렉스를 못 느끼느냐는 질문에 A군은 "예전에 그랬지만 마이스터고에 들어와 생각이 달라졌다. 박사 학위자도 취직을 못해 청소부를 지원하는데 취직 잘 되는 우리 학교가 짱이다"라며 웃었다.

A군을 비롯한 기술고 학생들의 이런 자신감은 기업들의 고졸 채용 확대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올해 들어 고졸 공채를 크게 늘리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 5월 9일 고졸 공채 채용 인원을 당초 600명에서 700명으로 확대해 최종 선발했다. 고졸 출신 응시자들의 자질이 뛰어나 인원을 늘렸다는 설명이다. 채용자들의 면면을 보면, 상업고가 420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업고 220명, 마이스터고 30명 등 670명이 전문계 고교 출신이고, 인문계 출신은 30명에 그쳤다.

고졸 출신 성공 모델 널리 확산돼야

현대자동차그룹도 최근 고졸 공채 공고를 냈는데 이는 2004년 이후 8년 만이다. 고졸 전문대졸 포함해 약 2200명을 채용할 계획인데 지원자가 1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현대차는 지난 2월 '마이스터고 우수학생'100명을 선정하는 등 향후 10년간 총 1000명의 전문 기술 인력을 양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SK그룹도 올해 고졸 채용 규모를 전년도에 비해 2배 이상 늘렸고, LG그룹은 올해 신규채용 1만5000명 중 5700명을 고졸 출신으로 뽑는다. LG그룹은 지난해부터 구미전자공고와 협력해 고졸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고졸 취업 증가 현상은 기업들의 '니즈'와 맞아떨어진 결과다. 기업은 고졸 채용을 늘리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일조를 하고 사회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다.

고졸자가 대졸자와 차별없는 사회가 구현되면. 대학등록금 문제나 사교육비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고학력자 위주다. 지난 10년간 상장사 고졸 출신 임원은 7.2%에서 2.6%로 감소했다. 고졸자의 임금은 4년제 대졸자의 77.5∼79.4% 수준으로 고착화된 상태이며, 직종도 판매 및 서비스직, 기능공, 단순노무직 등 저부가가치 산업에 몰려 있다.

고졸 출신을 냉대하는 사회는 인적 위화감은 물론 국가 전체 생산성 면에서도 마이너스다. 삼성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의 42%는 과잉 인력이며, 이들이 대학 진학 대신 취업한다면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1.01% 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정부기관의 분석과 일치한다. 고용노동부의 2011~2020년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전문대졸 이상은 50만명의 일자리가 남는 데 비해 고졸 일자리는 32만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과 고용간 불일치, 10년간 심화돼

이처럼 학력과 고용간 불일치는 국가 경제적으로 큰 낭비 요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졸 일자리의 양적 증가와 함께 질적인 면에서도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와 관련 최근 삼성경제연구소 류지성 연구원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을 위한 4大과제'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첫째, 학력(學歷)보다는 학력(學力)에 적합한 직무 개발. 둘째, 산학교육프로그램 활성화를 통한 적시적소 인력 공급. 셋째, 능력 위주의 공정한 인사제도. 넷째, 고졸 성공 사례를 적극 개발해 학력 중시 풍조를 해소할 것 등이다.

류 연구원의 지적은 기업의 입장에서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지만, 청년 구직자들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자신의 적성에 상관없이 묻지마식 대학에 진학하고, 그러다 보니 학력 인플레가 심화돼 300만 청년실업자를 낳았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대학 졸업장보다 자신의 눈높이와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현명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정규 기자 ikmens@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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